[윤석원의 농사일기 53] 노학자의 기우

  • 입력 2018.07.08 08:27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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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br>중앙대 명예교수

농사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농업용수의 확보인 것 같다. 노지 농사의 경우도 하늘에서 때를 맞추어 비를 내려주면야 농업용수 공급 장치를 따로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인간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지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가 먹을 것만 생산한다면야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터이다.

농업용수 조달의 한 방법으로 관정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소공, 중공, 대공이 있다. 소공은 30미터 내외로 땅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것이고, 대공은 100미터 내외를 파서 물을 끌어 올리는 관정을 말한다.

내가 농사짓고 있는 이 곳 강선리 윗골의 경우 대부분이 소규모 영세농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관정은 지난해 처음으로 한 집만이 소공을 설치했을 뿐이다. 농사규모가 작기 때문에 관정파기가 쉽지 않다. 소공에는 약 300만~400만원 소요되고 대공은 800만~1,000만원이 소요되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군에서 200만원 정도를 지원해 주기는 하는데 대공을 파야할 경우에는 600만~800만원을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소공만으로 충분한 지역도 있을 것이나 한발이 닥쳤을 때도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공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 농민들의 중론이다.

나는 아직 관정이 없다. 그래서 아래쪽에 있는 지인의 관정(대공)에서 물을 끌어 올려 물탱크에 저장한 뒤 과수원에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금년에는 나도 관정을 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면에서 관정수요를 조사한다기에 접수해 놓았다. 물론 관에서 지원하는 관정은 소공이지만 비용을 좀 보태서 대공을 파볼까 생각중이다. 그래도 추가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 되긴 한다.

관정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최근들어 부쩍 4차혁명시대의 스마트팜이니, 빅데이터 활용이니, 사물인터넷 활용이니, ICT 결합이니 하는 고비용 고투입 대규모 농사법이 미래의 한국농업이 가야할 방향인 것처럼 주장하는 일부 언론과 권력지향의 출세론자들(나는 이들을 기생충이라 부른다)을 보면서 우려와 염려를 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첨단 농사법 자체를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기술을 더욱 개발하고 연구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적용 가능한 작목이 있을 수 있고 미래 우리 농업의 한 축을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미래 한국농업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처럼 오도해서는 안 된다.

관정 하나 파려고 해도 자부담 비용이 만만치 않아 몸으로 때우는 농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러한 소규모 영세한 농민들이 머지않아 모두 농사를 그만두고 농촌에서 사라졌을 때 이 나라의 농촌과 농업은 얼마나 살아남아 있을지, 그 때 가서도 지금처럼이나마 농업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주장할 수나 있을지, 그 이후에 닥칠 국가적 위기와 재난을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농업은 농촌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농촌 없는 농업은 그냥 산업일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와 염려가 그저 은퇴한 노학자의 기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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