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선’ 넘어보는 청년여성농민들

[인터뷰] 박푸른들 농촌청년여성캠프 기획자
여성이 농촌에서 사는 법 더불어 찾는 농촌청년여성캠프

  • 입력 2018.07.06 15:4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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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청년여성캠프 기획자 박푸른들씨. 로컬스토리 제공
농촌청년여성캠프 기획자 박푸른들씨. 로컬스토리 제공

 

‘농촌청년여성캠프’라고 있다. 어디서 만든 교육프로그램도, 농민단체도 아닌데 전국에서 사람이 제법 모인다. 농촌에 사는, 혹은 앞으로 살 청년여성들이 서로가 겪는 고초와 자립의 희망을 나누며 2년째 순항 중이다. 4회차 캠프를 앞두고 기획자 박푸른들(30)씨의 농막 겸 작업실을 찾아 캠프의 지향점을 물었다.

 

농촌청년여성캠프,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집단인가.

한번 오시기도 했었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농촌에서 페미니즘(성평등주의)을 하자?’ 일단 목표는 그렇게 보였다. 최근 캠프를 참관해보니 농촌에서 사는 청년여성인 ‘나’는 누구고, 어떤 차별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짚어보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본래 농촌에서 페미니즘을 하자고 모인 건 아니었는데, 모여 놓고 우리의 문제를 보니 ‘아, 이게 페미니즘과 연결됐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뭔가 대단한 걸 한다기보단 ‘우리가 서로 모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구나’하고 느끼는, 자조모임의 성격이 강했다. 그 뒤론 당사자성 연구라고 할까? 우리가 처한 위치나 문제를 되짚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농촌’ 페미니즘은 무엇이 다른가.

정해진 방향이 없다. 어떤 사람은 부조리에 대해 강하게 얘기해야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기성세대를 배려해야한다고 얘기한다. 이 때 ‘넌 왜 그렇게 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정한 규칙이다.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의 존재도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각각의 마을공동체마다 환경이나 분위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이지만 누리고 경험한 범위가 너무나 다르다. 서로 상황을 보며 조언하되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도시에선 스스로가 이미 ‘페미니스트’라고 느낀 사람들이 서로 모이지 않나. 근데 여긴 다들 자기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하면서 온다. 그 단어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까지도 있다. 하지만 모임에 오면 결국은 ‘내가 들어보니, 네가 하는 그 말이 너를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라는 반응을 받아들인다.

 

지난 번 캠프의 일부 내용을 <한국농정>에 소개할 때 모든 참가자의 이름을 익명으로 담아주길 요청 받기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노해원씨(공동기획)의 얼굴을 내세웠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이고 부담스러운 게 농촌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동안 익명을 요청했던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끼리는 좀 더 내밀한 다독임이 가능했다. 아직까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하고 배척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해원씨가 전면에 노출된 건 ‘언제까지나 자조적인 모임으로만 갈 순 없다’고 생각해서다. 지금껏 세 번 캠프를 열며 우리가 직면한 농촌사회의 문제, 스스로의 문제 그리고 우리 각각이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 이제 잘 알겠는데 계속 그 얘기만 할 거야?’ 물론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서로 위로하겠지만, 더 나아가 이제는 뭔가 하나씩 해보자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그 첫 번째가 (목공) 기술이 됐다.

 

저항적 자세가 느껴진다.

맞다. 최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농촌 여성으로 컨텐츠를 만들며 예쁘고, 부드럽고, 착한 이미지만을 남겼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드릴도 들고, 톱도 들고. 우리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이야기도 나눠보자. ‘우리의 기술은 뭐지?’ 이번에 모일 15명이 전부 똑같이 멋진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많은 능력을 갖고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걸 이미지화하고 싶었다.

 

그런 기술은 자립하는 데 있어 실제로 필요하고 도움도 되겠다. 그런데 애초 마음만 먹으면 도전 가능한 일이었다는 건, 결국 지금까지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되지 않나.

겉만 봐선 그 말대로 의지의 문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회에 노출되지 못한 상황이라면? 농업고등학교를 다닐 때 2학년 수업을 선택하는데, 남자는 농기계반, 여자는 한복만들기 반에서 수업을 듣도록 고정돼 있었다. 나는 바느질 같은 건 잘 못해서 농기계반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일종의 사회적 거부를 당한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렇게, 접하지 못한 분야에서 ‘그냥 난 못해’ 하고 누가 해주길 바라고 있는 경우가 참 많다. 사실 하면 되는 건데. 이제 우리들에겐 한번 해보는 것, 선을 넘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캠프에선 그런 기회를 얻는 것이다.

 

또 어떤 선을 넘어볼 계획인가.

사실 어떤 것을 해야겠다고 계획한 건 없다. 틀이 유연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건지는 참가자들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번 캠프의 주제는 지난 캠프에 왔던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가 녹아들어 정해진 것이다. 기획하는 우리가 즐겁고, 참가자들의 의사에 따라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 그 방향성만큼은 잃지 않고 계속해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제 4회 농촌청년여성캠프(주관·후원 홍성여성농업인센터, 주최 청년여성농민캠프.)는 오는 14일 1박2일 일정으로 열린다. 홍보 포스터에서 공동기획자 노해원씨(사진)가 목공 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이번 캠프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제 4회 농촌청년여성캠프(주관·후원 홍성여성농업인센터, 주최 청년여성농민캠프.)는 오는 14일 1박2일 일정으로 열린다. 홍보 포스터에서 공동기획자 노해원씨(사진)가 목공 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이번 캠프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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