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농협 만들기, 농민 스스로 나서야

  • 입력 2018.07.08 10:32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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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조합장
김순재 전 조합장

‘농협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좋은 농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임들이 만들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농민단체들이 ‘농협개혁위원회’ 같은 모임을 단체 내에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러 농민단체의 농협 개혁 모임들은 그 원인이 농협 내부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농협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는 것은 아주 짧은 시기,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서다. 대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미리미리 일상에서 농협 사업에 여러 지적을 하지만 관심도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농협의 핵심적인 구성원인 농민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농협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좋은 농협 만들기 운동’ 같은 경우조차도 제대로 실천 안 되는 것은 현장의 농민들이 급한 불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규정을 바꿔야하는 정치권은 농협을 이용만 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농협 개혁의 필요성을 현장이 절실하게 인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좋은 농협으로 비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농업 예산, 바르게 쓰여야

매년 국회를 통과해 집행되는 농업 예산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막상 현장의 농민들에게 실익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미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농민들에게 직접 돌아가는 예산이 미미하기도 하지만 상당한 규모의 어떤 예산들은 일부 농민의 규모화 사업에 쓰여 상대적으로 많은 농민들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근 지역의 경우에는 직불금조차도 허위 서류에 의해 농민이 아닌 이들에게 빠져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충실히 현장을 살피는 농정의 부재에서 기본적으로 출발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실적에 매달려온 현재까지의 농정 결과이기도 하다. 이 역시 많은 부분들이 자기 이익에 급급한 일부 농민과 탁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행정의 결과물이다.

이번에 도-농 통합지역인 창원시의 시장이 바뀌어 시장 당선자의 인수위에 참여를 했었는데 2018년 농업 예산과 2017년 농업 예산의 결산자료를 보면서 현장 관련 예산의 30% 정도가 그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이후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 예산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우선 바르게 집행되도록 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먼저 바르게 집행하고 부족한 부분을 요청해야 하는 데 바르게 집행되지 않으니 효과가 미미하고, 효과가 미미한데도 예산 증액을 요청하니 정부가 예산을 올려 줄 턱이 없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부당한 방식으로 정부 예산을 수령한 농가나 그 예산을 집행한 기초 단위의 행정은 횡령-배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공범에 해당하니 현행 흐름이 유지가 되기를 바라며 그런 내용들은 농업 전반에 퍼져 있다. 그러니 정부 예산이 부당하게 쓰이면 관련 기관들 전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필자는 액수의 문제도 매우 중요하지만 바르게 계획하고 바르게 집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정부의 농업 예산이 바르게 쓰이지 못하고 개인의 사유화에 기여하고 있다면 농업은 계속 어려워질 것이고, 거기에 기댄 세력들은 지금과 같은 흐름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은 사업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농협의 비용·수수료는 적절한가

정부의 예산 집행 방식은 농협에서도 형식은 다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나타남을 알 수가 있다. 대개의 농협은 규정을 준수하면서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 그 내용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양식에 맞는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규정에 맞는 것과 앞으로의 지향점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농민과 관련된 농협의 비용들 중 ‘1)예금이자가 적절한가? 2)대출금리가 적정한가? 3)여러 수수료는 합당한가? 4)공동구매품들의 수수료는 적당한가? 5)판매에 따른 비용이 적절한가?’ 정도를 협동조합 내에서 따져 봐야 하는데, 필자 생각에는 구성원 스스로 심각히 고민한 흔적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예금이자가 적절한가?’, ‘대출금리는 적정한가?’는 오로지 농협 내부에서 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농협마다 그 내용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농협치고는 상당한 규모인 동읍농협도 예금의 이자·대출금리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오로지 내부의 판단만으로 결정했다. 본래 농협 설립 시 농가의 여윳돈은 농협에 맡기고 부족분은 농협에서 빌리도록 권유함에 있어 이율에 대한 결정은 사업의 안정성에 기여하며 위험도가 없도록 결정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던 것이다.

필자가 조합장일 때도 그랬었다. 전임 조합장도 그랬던 것으로 보이고 지금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결정은 이사회도, 총회도 거치지 않는다. 오로지 금융시장에 따라 그때그때 판단하지만 그 금액이 너무 많고 크다. 그럼에도 그 판단에 오류가 발생하면 도덕적 책임만 있을 뿐이다. 추가로 더 주거나 덜 받는 규정은 당연히 없다. 이게 옳은 문제인지 아닌지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농협의 여러 수수료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대개의 농협 수수료는 규정에 의해서 다수가 농민들인 농협의 이사회에서 정하고 그 이사회는 일정정도 농민들의 영향력에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수료 결정 과정에서 대부분의 농민 임원들은 수수료를 줄이자고 하고 농협 측 임원들은 ‘적정히’라고 표현하면서 올리자는 입장이다.

조합장을 하면서 보니까, 이 묘한 분위기에서 쉽게 합의점들이 도출되긴 하지만 실상은 농민들의 완패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는 훨씬 더 큰 떡인, 위의 1·2)번 항목에 농민들은 접근조차 못했고 겨우 소소한 비용에서만 의견을 피력했을 뿐이다.

좋은 농협을 만들기 위한 동력은 바로 농민 조합원에게 있다.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움직여야 농협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 농민들이 한 지역농협의 농자재 판매장을 이용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좋은 농협을 만들기 위한 동력은 바로 농민 조합원에게 있다.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움직여야 농협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 농민들이 한 지역농협의 농자재 판매장을 이용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 예산과 농협의 돈 흐름

정부가 집행하는 예산과 농협의 돈 흐름은 다른 문제이지만 농협의 돈 조성과 흐름이 정부의 예산과 전혀 별개의 문제는 아니다. 농민에게는 꼭 같은 문제이다. 농민들은 농협의 예금이자에는 전혀 협상의 여지가 없다. 오로지 이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근의 새마을금고나 우체국으로 이동할 선택권만 있을 뿐이다. 지금은 대출이자에서도 거의 협상의 여지가 없으며 기타 수수료에서만 농민을 대의하는 대의원들의 총회-이사들의 이사회를 통해 의견을 피력하고 결정할 뿐이다.

정부의 농업 예산 편성과 집행은 거의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농민 다수의 의견을 받는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농협의 제반 비용들이 농협의 주인이라는 조합원들의 의중을 반영한 것인지, 정부의 농업 예산이 농민들의 지향점·절실함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엊그제 충남 금산의 농민들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벼 묘판 사업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벼 묘판’ 사업에 똑같이 정부·농협이 개입했음에도 금산의 농민들은 묘판 하나당 2,400~3,200원까지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으며 창원의 농민들은 2,000~2,400원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왜 정부와 농협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2,000~2,400원을 부담하는 창원의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금산의 농민들에게 돌아가도록 조치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는가?

필자 생각에는 돈의 흐름은 생각들이 바르게 잡혀야 그 흐름이 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누가 해야 하는가?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하고 농협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야 함에도, 현장의 농민들이 절실하게 나서지 않으니 될 턱이 없는 것이다.

자기 몫,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

정부의 농업 예산 중에서 농민에게 직접 투입되는 예산은 ‘얼마를, 어떻게’ 손봐야 할까?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지만 전체 농업 예산 중에서 매년 3%만 다듬어 가면 충분하다고 본다. 매년 3% 정도의 예산이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다듬어 가면, 10년이면 거의 바르게 잡아갈 수 있고 공무원들의 인식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농협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장 농민들이 조금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 정부는 여러 규정을 사소하게라도 손보고 농협이 더욱 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노력들을 할 것이다. 늘 느끼는 것은 현장 농민들이 강력히 요구하며 움직이지 않으면 정부도 농협도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주의 사회를 더욱 지향하고자하는 우리 사회 전반을 위해서도, 올바른 농업정책을 위해서도 현장 농민들이 바른 생각을 가진 농업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뭉치는 노력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바뀌는 경우나 농협의 조합장이 바뀔 때마다 사소한 희망을 품다가 곧 포기하는 농민들의 경향을 지난 30년 동안 농업에 종사하면서 봐 왔다. 희망을 반복적으로 포기하다보니, 현장에서의 삶이 고단하다 보니, 농민들은 쉽게 희망을 버리고 낙담을 생활처럼 안고 가지만 이는 버려야 할 습관이다.

농민들이 자기 몫, 권리를 포기하는데 어느 농업 관료가 나서고, 농협 관계자가 나서서 농민들을 챙겨 주겠는가? 그런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헛된 생각이다. 좋은 농협·바른 농협을 위해서는 늘 농민들이 밀어주고 생각을 전달하는 노력들이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일을 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현장 농민들이 침묵하면 사소한 메아리에 불과한 잡음일 뿐인 것으로 인식한다.

잘 드는 낫도 오래 쓰면 갈아 써야

필자가 조합장 불출마를 결정했을 때, 같은 결정을 내린 조합장이 또 있었다. 나이도 오십대 후반에 불과 했고, 생활도 탄탄했으며 생각도 대단히 합리적인 분이셨는데 불출마 하겠다기에 물었다. “왜 조합장을 그만 두시려 합니까?”하니 그 분이 “잘 드는 낫도 두서너 시간 쓰고 나면 또 갈아서 써야 하는데 조합장을 두 번이나 했으면 쓸 아이디어는 거의 썼다고 봐야 하는데 길게 해서 농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요?”라고 반문하셨다.

요즘에야 낫을 거의 쓰지 않지만 말을 바꿔 낫이 아니고 예취기도 그 날을 오래 쓰다보면 무뎌지고 단단한 것에 부딪혀서 못쓰게 돼 날을 갈아야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사람들도 같다고 봐야 한다. 한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생각이 무뎌지고 관성에 빠진다. 그러면 단련시키는 새로운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농협 조합장들이야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단련되는 시기라도 있지만 행정의 관료들은 흐름을 바꾸는 노력에 소홀 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현장의 농민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에는 여러 조직들이 있다. 다수의 농민단체들이 어용적인 성향이 있지만 좋은 농민단체들도 많다. 정말 좋은 농민단체들은 정부나 경찰, 정보기관 등에서 만류를 해도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단체들까지도 당면한 문제에는 적극 나서도, 길게 보는 흐름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이 농협이 좀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들을 하는데 이는 정부와 농협이 함께 나서면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동력을 현장에서 보태야 한다.

이번에 참여했던 창원시장 인수위 활동에서 보듯 스스로의 몫에 대해 바르게 주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기울어진 구조에 대한 인식들이 낮아서 불가피한 현실로 느끼며 그냥 가는 것이다. 정부의 농정 개혁, 좋은 농협 만들기는 우리 농민들이 나서야 하는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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