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에게도 하루 8시간 노동을

  • 입력 2018.07.08 10:30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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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하지가 지났다고 하지만 하루해가 참으로 길다. 아침 해 뜰 때부터 저녁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동동동.

여성농민들이 모이면 꼭 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집안에서부터 들판까지 내 손길이 가야하는 곳이 끝이 없다는 것과 몸 어디 어디가 아프다는 이야기이다. 해가 긴 요즘 같은 때는 하루 10시간도 좋고 12시간도 좋다. 해가 있을 동안은 무슨 일이든지 힘을 써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성농민이다.

농사지어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자니 농사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농촌이다. 자연히 일은 많고 그 일을 해 내자니 몸이 못 배겨난다. 누구에게나 건강이 최고인데 몸을 혹사해 가며 일을 하니 미련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이번 달부터 시행하는 ‘주 52시간 노동시간제’가 이슈다. 정확히는 주 5일 근무에 하루 8시간 노동이다.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12시간을 넘기지 말 것을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이다. 임금 문제 등의 대책 없이는 ‘저녁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 굶는 삶’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어서 의미 있는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좀 더 개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가진 사람만이 웰빙(Well being)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까지 웰빙을 누리는 사회가 진보하는 사회라면 이번 정책이 그런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농촌에서 농민으로 사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일이 힘들어도 몸이 고달파도 돈을 못 벌어도 여성농민으로 사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하루 8시간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할 것 같다.

8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마당에 꽃도 가꾸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지는 석양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아침저녁으로는 한가하게 동네 산책도 하며 이웃집 마당도 기웃거려 보고 싶다. 저녁 일찍 해 먹고 마을학교에 있는 운동기구도 이용해 보고 싶고, 밤에는 동네 밑에 있는 찻집에서 이웃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농민은 노동자처럼 누가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하루 12시간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인데, 어찌 하오리까?”라고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여성농민도 8시간만 일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농민의 삶과 농촌의 현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농민 개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정부 정책적으로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노동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들을 시행해야 한다. 전격적으로 시행되는 주 40시간 노동시간제도에 더 이상 농민들이 부러워하고 쓸쓸해 하는 나라가 아니어야 한다.

장맛비가 나흘째 내린다. 걱정을 해도 소용이 없고, 하늘을 쳐다봐도 소용이 없는걸 알지만 마음이 심란하다. 이제 곧 수확해야 할 단호박은 이 비에 썩지나 않을지? 또 이 비 뒤에 올 병충해는 얼마나 심할지? 오직 농민 당사자들만이 애를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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