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허업(虛業)이 안 될 정부를 위해

  • 입력 2018.07.01 17:27
  • 수정 2018.07.01 17:34
  • 기자명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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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여든이 되던 내 생일날, 나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었던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정치 풍운아 김종필 전 총리와 깨복쟁이 친구 오헌진 변호사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아파트 옥상 텃밭에서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인생(人生)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한 분은 “정치란 허업(虛業)”이었다고 자기 부정의 명언을 남겼지만, 젊었을 적 유난히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동창은 병석에서 애통해 하며 소천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헛된 것이었던가?

자신에 대해 만족해야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 브라이언트 맥길(Bryant McGill)은 최근 어떻게 사는 것이 보다 행복한 삶일까에 대한 글을 SNS에 올려 수천만 명의 심금을 사로잡았다. 본질적으로 그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확신하며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고 믿는데서부터 시작해 어둡고 부정적인 사회에서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인생을 어떻게 하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으로 바꿔 나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자기의 행복은 타인의 삶과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자유, 풍요, 행복 모두가 주관적인 것이어야 하며 비교해서 측정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물질의 수량으로 계측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기쁘고 내가 좋으면 되는 것이고 남에게 결코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농장이나 텃밭에서 나와 우리 가족이 필요로 하는 음식물을 직접 재배해 자급하고, 남는 것은 가까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모자란 것은 믿는 사람·곳에서 구해 올 수 있으면 족하다.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양육비도 필요한 만큼 조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게 뭐 인생의 멋이란 말인가! 행복이란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함을 아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고루 행복해지는 길이다.

자연과 함께 사는 법

세계에서 국민총소득(GDP) 지표가 세계 167위로 1인당 320달러이지만 행복지수는 세계 제1위로 높은 나라가 우리 한반도 보다 국토 면적이 조금 크고 인구는 75만명에 불과한 부탄이라는 히말라야 산악지대의 나라이다. 이 부탄의 국민들이 매일 드리는 기도(라마교)는 자기 가족이나 자식의 안위와 성공 또는 재물에 대한 바람이 아니고 대자연이 그대로 잘 보전돼 있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자연과 함께 자기 식구들과 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함께 사는 방법’을 비는 기도이다.

우리는 지난 산업개발 시기 너무나 많은 자연자원을 파괴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산림이 파괴되고 하천이 훼손됐으며 자연경관과 환경생태계가 무자비하게 오염되고 공격당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산하는 더 이상 삼천리금수강산이 아니다. 그 자연 속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크고 작은 생물들이 사라져 종의 다양성이 축소됐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농약, 특히 제초제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꿀벌들의 개체수가 반 이하로 줄어들고 토양과 하천 호수들이 오염돼 인간 생존마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진 상태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는 소홀하고 오직 자연자원을 파괴하고 이용하는 데만 골몰해 온 결과이다.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 생물이 성장하는 토양의 질이 원상회복마저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의 개발과 산업화의 피해가 얼마나 심대한가를 나타낸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래됐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개발은 무조건 좋은 것이며 옳은 것이라고 믿어왔다. 산업화 발전이라는 말이 개발 신화의 대상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불가역적으로 악화된 환경생태계 하에서나마 우리는 다시 행복한 삶,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자유와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을 꿈꿔야 한다. 자연도 살리고 인간도 사는 균형된 사회를 지향하고 나가야 한다.

국민 건강과 생명, 농업을 살리는 일은 게을리 할 수 없다. 어떤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철학과 사상으로 무장돼 있는가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농정 공약의 이행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농어민이 대접받는 나라’를 주제로 농정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민 건강과 생명, 농업을 살리는 일은 게을리 할 수 없다. 어떤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철학과 사상으로 무장돼 있는가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농정 공약의 이행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농어민이 대접받는 나라’를 주제로 농정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우울한 시장경제

경제개발로 자연생태계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뒷받침 하던 공동체 사회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장경제, 특히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도입으로 일견 국민총생산(GNP)이 급성장하는 듯 보였지만 불균형 성장과 사회 양극화의 가속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보편화됐다.

돈의 권력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부문에 주요 지배체계를 형성했다. 있는 자, 더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자, 더 적게 가진 자를 폭압하는 불평등·불균형 사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체질적으로 성장이 더딘 농업부문은 상공업 종사자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차별과 불평등한 사회적 대접을 감수하게 됐다.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더 먼저 산업화된 나라가 늦게 산업화의 길을 걷는 나라를 호구로 삼아 경제·사회적으로 짓밟고, 국내에서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후발국가의 농업계층이 착취와 차별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래서 시장경제학을 가리켜 ‘우울한 학문(Gloomy Science)’이라 했던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부채질하는 학문이다.

돈의 권력을 틀어 쥔 산업과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산업과 사람을 짓밟는 경제사회, 즉 자유시장경제 대신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을 살려낼 경제학은 없을까 모두들 고민하기 시작했다. 작년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차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그려 낸 우울하지 않은 진짜 사람 모습을 한 경제학 이론은 다분히 고무적이다. 그가 보여 주는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하고,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엔 스스로를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다만 공정함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기존의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킨 행동경제학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려 한다.

아파봐야 정신 차리는 세상

여기서 우리는 피도 있고 살도 있으며 영혼과 정신이 있는 인간(사람)들이 함께 고루 잘 살게 할 방법을 찾아본다. 포상금을 걸어서라도 크고 작은 각종 아이디어도 공모해 보자. 기울어진 운동장과 깊어진 불의의 시대에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존재가치와 존엄성이 있다는 생명사상, 공동체 운동을 상상해 보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고 개발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농업과 상공업이 공생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가 공존·공영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행동해 보자.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함께 사는 사회가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치가 허업이었던 것은 그러한 철학, 생명사상과 공동체 운동이 허약했던 탓이다.

지금 농촌마을 곳곳이 인구 과소화와 고령화 현상으로 소멸될 위기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지도자들)가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을 하찮게 여기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망각한 소치에서 발원한다. 안전한 먹거리와 온전한 밥상이 없이도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잘못된 근시안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가족이 화학물질에 오염된 농산물이나 GMO(유전자조작식품) 상용으로 신장이나 간이 손상되고 종양과 암으로 고통을 받아봐야 유기농산물과 Non-GMO 식품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요즘 사람들이란 단지 세월(시간)이 흘러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계층은 ‘민초’들이다. 민초들에겐 그만큼 정보도 부족하고 선택의 폭도 좁고 적기 때문이다. 부자들과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먼저 아프고 더 크게 아파보라는 말이 아니다. 선택의 기호와 폭이 그들에게는 더 많으니 어찌하랴. 다만,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책임이 부자와 높은 사람들에게 더 크다는 사실이다.

어떤 나라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까?

사람이 건강하게 무병장수하는 비결은 ①안전한 먹거리 ②평화로운 정신상태 ③규칙적인 운동이라고 한다. 후자의 두 가지 항목은 개인적이고 명백한 행동양식이지만, 첫 번째 안전하고 온전한 밥상 만들기는 다분히 국가적 동력과 체제가 정비돼야 한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먹거리 운동만은 온전히 직접 챙기고 다스릴 각오와 책임질 행동을 수행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자연과 환경생태계도 살리고 국민 건강과 생명을 살리며 관련 산업인 농업과 상공업을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지난해 촛불혁명은 그러한 대통령과 총리를 가진, 나라다운 나라를 염원했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안전한 먹거리와 Non-GMO 학교급식을 약속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어떤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철학과 사상으로 무장돼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대통령이 먼저 약속(공약)을 지키면 된다. 총리와 식약처장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그 공약을 실현·실천하는데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본다. 돈의 권력 앞에 찌들지 않는 문재인정부를 대망해 본다. 정치가 허업이 안 될 문재인정부를 위해.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의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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