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농경사회 사람들] 큰애야 셋째 온다, 빨리 숫돌 감춰라②

  • 입력 2018.07.01 15:39
  • 수정 2018.07.01 15:41
  • 기자명 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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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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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흠 씨 복숭아농사 이야기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도흠 씨 농사를 지지하는 쪽과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곤 했다. 나는 도흠 씨가 수확한 복숭아를 공판장에서 몇 해에 걸쳐 본 것이 전부였지만 그걸 볼 때마다 안면이 경직되던 기억은 개미가 이마를 가로질러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흐리지만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은 저문 칠월 어느 날 공판장에서 도흠 씨를 만났던 날 풍경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어릴 때부터 동네 형님이었으며 무엇보다 친구의 셋째형이면서 또 다른 친구의 둘째삼촌이었으니 나로선 인사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그의 팔을 잡아 공판장 한켠에 있는 식당으로 끌었으나 도흠 씨는 아직 술을 못 배웠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도흠 씨와 함께 공판장 안에 길게 늘어놓은 복숭아상자 사이로 슬금슬금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도흠 씨 복숭아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천도복숭아가 너무나 잘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천도복숭아라고해도 그렇지, 개수 표시를 보니 굵은 것이 구십 개 정도였고 나머지는 백 이십에서 백 육십 몇 개까지였다.

“굵게 키우면 짝수가 별로 안 나와. 많이 따야 돈도 많지 뭐.”

너무 많이 달아서 솎아낸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물건 앞에서 내가 뭐라고 한소리 했을 때 도흠 씨가 뱉은 말은 그게 다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앞에서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돈 되나요? 그렇게 물었던 방정스런 입을 나는 손으로 덮어야 했다.

당시만 해도 복숭아를 직접 출하하는 사람들의 일과는 대개가 비슷했다. 공판장에서 물건을 사면 현금을 봉투에 넣어주던 때였으니까 돈을 손에 받아 쥐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역반원들이 상자를 내려 숫자 파악이 끝나면 불볕더위가 들끓거나 비가 내리는 콘크리트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내남없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에어컨바람이 시원하게 만들어놓은 식당에 모여앉아 막걸리 두 병에 사이다 한 병을 섞은 주전자를 기울이면 그 자리가 별천지였다. 열한 시가 되어 경매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종소리가 들리면 물건을 앞쪽에 갖다놓은 사람들부터 슬금슬금 나갔다가 돌아오고는 했다. 얼굴빛이 밝거나 어두워진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어느 누군가에게 경매가 임박했음을 알려주었고, 또 몇 사람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모두들 얼굴은 불콰해진다.

그때는 알속 십오 킬로그램을 상자에 넣어야했던 시절이었다. 물건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공판장을 떠나기까지 경매장에서 보여주는 형태는 다양했다. 윗마을 권동식 씨 같은 사람은 개봉해놓은 자기 물건에 그 어느 누구도 손을 못 대게 했다. 먼 도시에서 온 장사꾼들은 물건을 파헤쳐본 뒤에 점찍어 놓는데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예 집사람을 데려와 보초까지 세워둔 일은 오래 술안주거리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물건 가격이 낮게 나왔다고 경매를 중단시키고는 자 봐라, 하면서 복숭아 몇 상자를 바닥에다 쏟아버리기도 했다. 밑바닥 물건과 위에 올려놓은 물건 크기가 다르다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당시만 해도 ‘속박이’ 행위는 농사꾼들의 고질병이었다. 그 이유 말고도 공판장 바닥에 복숭아상자를 뒤집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 못된 도시 장사치들이 돌아다니며 고약한 짓거리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구경하며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걸 만나면 썩은 복숭아 몇 개를 상자 위쪽에 슬쩍 끼워놓으면 그걸 본 대부분 중매인들은 가격을 후려치지 않을 수 없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천도복숭아를 워낙 많이 달아 알이 잔 것으로만 파는 것으로 소문난 도흠 씨, 워낙 짠돌이라 부모조차 흉을 보던 그 도흠 씨가 쉰 몇 살 어느 날 동네 친구들을 몽땅 시내로 모셨던 일은 유명하다. 택시를 대절해 근사한 곳에서 불고기로 요기한 뒤 요정으로 가서 술을 샀다는 건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친구들, 그간 미안했네. 이 술 한잔으로 용서하게나. 어눌한 말 한마디가 전부였던 그날 밤 이후 도흠 씨는 한두 잔씩 공개된 자리에서 술잔을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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