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서울쥐, 시골쥐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눈앞의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 걸 알아버렸다.

  • 입력 2018.07.01 01:35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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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아무리 그곳이 좋다 해도 살던 터를 버리고 새 삶을 찾아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물을 건너가는 건 더 많은 것들을 남겨둬야 해서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꿈으로만 끝낼 바람이었을 것이다.

서울쥐 - 육지에서 온 몽생이들

3년 사이에 나는 이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에 온 친구들, 이주민이라는 말이 싫어서 ‘새로운 동네 사람’이라 하자고, 이주민 꼬리표를 달고 언제까지 살 거냐고 우겨보는 것은, 눈여겨 본 친구들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빈 집 구해주세요”, “이 동네 살 땅 좀”. 우리 동네가 괜히 마음에 든다며 꼭 여기라야 된다고 하는데, 어림잡아도 열 배를 훌쩍 넘어버린 땅값에 마음과 돈에 맞는 곳을 찾기는 이미 틀린 일이다. 나하고 친한 벗들은 하나같이 별 가진 거 없이 용감하거나 머리만 꽉 찬 놈들 뿐이라 겨우 빈집을 얻어 끝까지 버텨내는 일이 뭐 있을까 머리들을 굴린다. 살면서 땅 좀 늘려 놓았으면 이럴 때 “내 말 잘 듣고 살아라” 큰소리치며 살았으련만 아쉬움이 너무 많다.

토박이와 서울 촌놈들의 조우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눈앞의 일들이 잘 풀려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돕지 않으면 다시 튀어나갈 그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말싸움을 시작하려 한다.

내로라하는 회사 전무님에서 당근농사 3년을 버틴 동갑내기 친구에게 “이 동네 살려면 내 말 잘 들어야 해”, “당근 농사는 꼭 이렇게 하는 거다”라며 토도 달지 못하게도 해 본다.

도시재생, 마을재생 일을 하는 친구,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고 살다온 여성, 출판하는 일을 접고 살아생전 제주의 모습을 담았던 아버지를 쫓아 꼭 그 자리에 가서 다시 사진에 담아 오겠다고 매일 헤매다니는 형님, 머리 식히려고 제주에 왔다가 도저히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젊은 놈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골치 아파하는 농산물 유통, 인터넷 판매를 잘 해왔고 이제 이 동네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어렵게 구한 집에서 가깝게 모인 친구들. 아마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뺏어 올 것이다.

작년까지 말 잘 듣던 형님이 “아우가 도움 된 게 뭐냐”며 반항을 시작했다.

“네 말 듣고 농사 해봐도 뭐 그리 시원찮다” 한다.

“마을 사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한다.

“형님 나도 한 가닥 했었거든요” 한다.

서울 몽생이가 제주 터줏 몽생이를 이겨 먹으려고 말들이 많다. 그래 다 좋은데 떠나지만 마시라. 어떡하든 참고 있으면 머물 곳 마련하고 먹고 살 일 만들어 볼 테니 제발 서로 같은 편이 돼서 좋은 꼴들 만들어 보자고.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비가 오면 큰 창고집으로 다시 모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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