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홍천농고 이야기

정은정 농촌사회학자

  • 입력 2018.07.01 00:33
  • 수정 2018.07.01 00:42
  • 기자명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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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농촌사회학자
정은정
농촌사회학자

2016년 이맘 때, 홍천농업고등학교에서 양계전공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고등학생 대상 강의를 적지 않게 다녔지만 방학 직전이거나 새학년 올라가기 전인 2월에 투입되곤 했으니 분위기가 썩 좋진 않다. 시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가와의 만남’이란 행사는 툭하면 이루어지는데다 학생부에 한 줄 적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많아서 작가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것이 중고등학생 강의이다.

하물며 ‘농업고등학교’라니. 기대조차 없었다. 그저 농업고등학교라는 이유만으로, 또 교사들의 열정을 응원하기 위해 갔을 뿐이다. 당시 LG의 농업 진출이 농업계에 큰 이슈였고, 농민운동 진영에서는 많은 우려를 표했지만 농업고등학교의 입장은 달랐다. 교장 선생님은 농고를 나와도 ‘엘지’나 ‘동부’ 같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라는 특별주문이 나왔다. 하긴 모두가 공무원을 지망하거나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싶어 지옥같은 수험생활을 견디는데 농업고 학생들이라 하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의외로(?) 강의는 성공적이었다. 잘 경청해 주었고 몇 명 되지 않는 양계 전공의 3학년생들을 보자니 그저 울컥하고 어쩐지 미안했다. 꼭 한 번 만나서 치맥 먹자고 했는데 성의가 부족해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신입생을 끝으로 식품과(조리학) 학생들을 모집하지 않는다 해서 글 쓰는 요리사로 유명한 박찬일 요리사에게 강의와 일일 요리 실습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양계가 유명한 학교이니 계란을 이용한 음식과 파스타 실습이었다. ‘폐과’가 예정된 곳이어서 흥이 날까 싶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만들고 입에 넣는 물리적인 움직임은 교사도 학생들에게 활력을 준다.

홍천농고에 가면 운동장과 실습장에 학생들이 농기계를 멋들어지게 다루는 풍경을 마주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구체성, 즉 고도의 추상성만 다루는 여타의 고등학교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보았다. 성적에 맞춰서 왔든지, 농업에 뜻이 있어서 왔든지 배우고 익히는 것들이 대체로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 농업고등학교의 힘이지 않겠는가.

이후에 농업고등학교 학제에 관심이 생겨서 농업 교과서를 구해서 공부를 했다. 교과서는 힘이 세니 농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본다면 이 나라가 농업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결론은 산업으로서의 농업만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6차 산업화나 스마트팜과 같은 최신의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농업은 농촌이란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문화적 행위이기도 한데 이런 가르침은 부족해 보였다. 근래에 가장 각광을 받는 ‘드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첨단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지만 농촌에서 살아가야 할 농민의 이야기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최근 청년농부 담론에서도 놓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조류독감(AI)과 살충제 계란 사태 같은 닭에 일이 생기면 홍농의 안부를 묻곤 한다. 나는 홍천농고에 다녀온 이후에 냉면이나 비빔국수에 얹은 삶은 계란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계란만 보면 그 얼굴들이 떠올라서 말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밥을 벌고 살지 모르지만, 손에 흙을 묻혀본 그 경험만이 한국 농촌의 유일한 희망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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