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금은 반성의 시간

  • 입력 2018.06.24 11:01
  • 수정 2018.07.02 10:3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락시장 청과도매법인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위탁수수료 담합’ 판결을 받았다. 16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농민이라는 약자를 상대로 한 담합이라는 점에서 언론도 뜨거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도매법인들은 전후사정을 뜯어보면 결코 담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 출입기자로서 생각하건대 도매법인들이 정말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려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문제의 원인은 도매법인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한 법과 제도에 있고, 도매법인-출하자-행정 간에 무의식적으로 굳어져 온 분위기와 관행에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법과 제도, 분위기와 관행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서 반대했던 것 또한 도매법인이다. 수탁경쟁체제 구축을 위한 상장예외 확대나 시장도매인 도입에도, 출하자 부담 경감을 위한 위탁수수료 인상 제한 조치에도 도매법인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설사 그 과정은 본인들의 권익을 위한 평범한 의견표출이라 하더라도 결과는 대단히 불합리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법인당 영업이익률이… 얼마요? 14~21%요? 이 수치가 잘못된 겁니까? 잘못됐으면 어디 얘기해 보세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의장이 이렇게 추궁하자 앞다퉈 결백을 호소하던 도매법인과 그 변호사들은 한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해마다 수십억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수억원의 기부활동을 하며, 재판마다 천문학적 의뢰비를 받는 메이저로펌을 고용하는 것은 농업 관련 분야에서 가락시장 도매법인들만이 누리는 호사다. 유독 한 주체에게 이처럼 과도한 자금이 축적되고 있다는 건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다.

내릴 수 있는 위탁수수료를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면,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 함몰됐다면, 공정위의 판결 앞에서 결코 당당할 수 없다. 도매법인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자각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농민들과 더 많이 이익을 나눌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