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4년 선거농사, 잘 지었습니까?

  • 입력 2018.06.24 00:49
  • 수정 2018.06.24 00:52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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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6.13 지방선거는 농민들로서는 가장 바쁜 농사철에 치러졌다. 안 그래도 없는 일꾼에 발을 동동 구르던 농가들은 선거 때문에 더 일꾼이 없다며 선거운동원들에게 하소연까지 하였다.

올해 따라 마늘수확 작업은 올 초 잦은 비로 인해 땅이 다져지면서 수확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기계로 캐보지만 마늘 하나에 주먹보다도 더 큰 흙이 함께 딸려 오다보니 평소보다 2배로 일도 많고 시간도 많이 들었고 농민들은 하나같이 더운 날씨에 지쳐 있었다. 가뜩이나 예년보다 가격도 좋지 않은데 품삯도 일거리도 배로 늘다보니 모두들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왜 항상 지방선거는 가장 바쁜 농번기에 하냐며 날짜를 옮겨야 한다는 등 항의하는 농민들도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촌지역에서는 농번기에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지역에서 농업을 위해, 농촌을 위해, 지역을 위해 일할 일꾼들을 선출하는 중요한 선거임에도 일단 눈앞에 닥친 농사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자질과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앞으로 농촌에서는 지방선거일도 공약으로 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한 가운데에서 치러진 선거라 남북의 화해 분위기,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편승하여 중앙의 정치적 상황이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전국적으로 파란색 민주당이 압승을 하였다. 빨간색의 자유한국당 일색이던 경남에서도 도지사를 비롯, 큰 도시의 시장들은 모두 민주당이 당선되었다. 도의회도 민주당이 훨씬 우위를 점하였다. 지방선거가 시작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합천에도 처음으로 비례를 포함하여 민주당이 3명이나 당선되었다. 이전 선거에서 후보도 없었던 민주당으로서는 가장 큰 성과였으며, 여기에 무소속 당선자까지 하면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의회정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일꾼을 뽑았는지 씁쓸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 유권자들은 왕이 된다. 이 후보 저 후보 할 것 없이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다 들어준다. 하루에 같은 사람을 몇 번씩 보더라도 무조건 인사를 하고, 평소 같으면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약속을 잡지만 이 때만은 유권자들이 약속을 잡고 초청을 한다.

본 선거가 시작되기 전인 5월 중순 합천군 농민단체협의회에서는 합천군 농정공약에 대해서 질의서를 보내고 군수후보들을 초청하여 답변과 농정협약식을 진행하였다. 모든 후보들이 참석을 하였다. 모두들 농업·농민들을 살피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유권자보다 의원과 군수가 왕이 된다. 군민의 머슴으로, 일꾼으로 일을 해야 함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치가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군민을 대표해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지역일꾼을 뽑는 자리인데 과연 우리 유권자들은 그 기준으로 선택을 했는지 묻고 싶다. 4년 선거농사, 잘 지었습니까?

또한 여전히 농촌지역에서는 선거 때마다 나오는 ‘돈 폭탄’ 금전선거는 언제쯤 그 끝을 맺을 수 있을지, 지방정치에 회의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지방선거는 집권당, 다수당, 돈 주는 후보, 친인척, 지역 연고자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지역의 발전과 주민을 위해 일할 사람, 열심히 뛰어다닐 사람, 농촌과 농업·농민들을 위해 일할 후보가 누구인지, 꼼꼼히 살펴 정말 인물·공약·미래를 보고 투표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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