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기고] 아로니아 뽑아내고 메주콩 심는 진석이 형님

  • 입력 2018.06.23 11:11
  • 기자명 유문철 단양군농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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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철 단양군농민회 사무국장]

과수 심은 거야 그냥 하면 되지만 올해 빈 밭과 논엔 뭘 심을까 고민하다 봄에 우울증까지 걸렸더랬죠. 근데 일철은 일철인가 봅니다. 빈 밭에 감자와 고추 심고, 모내기도 하고, 단양군농민회 통일경작 밭 1,000평 갈아 옥수수도 심고, 나머지 빈 밭에 심을 들깨 모종도 준비하고요. 다음 주엔 마늘 캐고 나서 날씨 봐서 비 소식에 맞춰 밭 갈아 메주콩 심을 궁리도 하죠. 새벽에는 날마다 서너 시간씩 예취기 메고 사과밭, 감밭, 오미자밭, 매실밭 3,000평 풀도 깎고요.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오전에 감나무밭 풀 깎고 나서 한결이랑 뒹굴며 놀려고 했더니요. 윗마을 사는 58년 개띠 진석이 형님이 콩 심는다고 밭 갈아 달라네요. 사흘 전 밭일 하다 만났는데 농민회 가입하라니 한결아빠 하는 건 다 따라한다며 선뜻 농민회 가입했는데 거절할 수 있나요? ‘똥값’된 아로니아 한 고랑씩 다 뽑고 콩이나 심는 다네요. 5년이나 기른 나무를 절반이나 뽑아냈으니 그 속이 얼마나 쓰릴까요? 1,000평 좀 넘는다길래 금방 로터리 치겠지 하고 갔다가 비탈밭에서 아로니아 사이로 묘기를 부리느라 6시간 넘도록 죽을 고생을 했네요.

밭을 다 갈고 나서 기진맥진한 절 보더니 진석이 형님 왈, “미안혀. 애 먹었지? 밭이 1,400평인데 하우스하고 이거저거 빼면 1,200평이여. 로터리값 평당 200원이지. 24만원에다 6만원 얹어 30만원. 오케이? 저녁에 한 턱 낼께 잉?”

아로니아란 듣도 보도 못한 특수작물을 이전 단양군수가 7년 전 단양군 대표 농산물로 육성한다며 보조사업이라고 마을마다 이장들 동원해 아로니아 심으라 했죠. 벌레도 안 먹고 병도 안 드니 농약 칠 필요 없어 친환경하기 거저먹기라고요. 친환경 인증 받은 아로니아는 농민들이 생산만 하면 좋은 값에 전량 수매한다고요. 평당 5만원 농사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요. 처음 몇 해 먼저 심은 사람들이 떼돈 번다하니 너도나도 심어 단양군에만 400농가가 넘고 전국 생산물량 30프로가 넘네요.

근데요. 떼돈은커녕 지난해부터 농민들 저온저장고에 쌓인 아로니아가 줄어들질 않네요. 첨엔 1kg당 3만원 하던 것이 해마다 값이 뚝뚝 떨어지더니 지난해에는 도매가가 5,000원도 안되네요. 5,000원이라도 도매로 싹 팔면 좋겠는데 사겠다는 장사꾼이 없네요. 전량 수매한다던 단양군은 군수 바뀌고 나서 고작 10% 남짓밖에 수매를 안 하네요. 수매가도 형편없네요. 이 일을 어째요. 그런데도 400여 농가는 군에다 대고 왜 약속대로 전량 수매 안하냐고 항의도 못하네요. 뭐라는지 아세요? “한두 번 속았어? 그냥 뽑아치우면 그만이지.”

진석이 형님도 올해 절반을 뽑아냈고 여차하면 나머지도 다 뽑아 치운다네요. “그러니까 좌우당간 농민회를 해야 하는거유. 아로니아 따가지고 사람들하고 군청 몰려가서 마당에다 농림과에다 군수실에다 쏟아보슈. 대번에 전량 수매한다 그러지. 전라도 농민들 못봤슈? 쌀값 보장하라고 논 갈아엎고 나락 불태우고 청와대 앞에까지 가서 아스팔트에 나락 쏟는 거. 암말도 안하고 있으니까 군수고 농림과장이고 농업기술센터 소장이고 농민들 내리보며 천치바보로 아는 거 아뉴?”

“그러니까 한결아빠 믿고 농민회 가입했잖아. 어떻게 좀 해 봐. 쥐꼬리만큼 보조 받고 아로니아 딱 두 번 땄어. 손해가 막심혀.”

“전 애당초 이럴 줄 알고 아로니아 안 심었잖유. 아, 폴란드에서 수백만평 단위로 완전 기계화해서 재배하는 걸 뭔 수로 당해유? 홈쇼핑 봐유. 폴란드산 유기농 동결건조 아로니아 분말이 넘쳐나유. 애초부터 사기유 사기. 근데도 아로니아 심은 400농가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데 제가 뭘 어째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콩 농사 잘 지을 테니까 가을에 콩이나 털어줘. 콩 팔아서 농민회에 후원금도 많이 낼 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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