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신뢰, 농업협력과 쌀로 쌓자

  • 입력 2018.06.21 14:15
  • 기자명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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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일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요즘 눈만 뜨면 남북, 북미정상회담 뉴스다. 제1야당의 홍준표 대표나 김성태 원내대표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기승전 6.12’이다. 몽매간에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5,000만 민초들에겐 그 잡놈들, 자유한국당의 씨부렁거림은 죄다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이다. 진정성이 묻어나지 않은 언행은 허깨비이다.

그래서 필자는 갑작스레 찾아 온 남북 간 통일 기회가 몹시 두렵고 무섭다. 이미 우리 모두는 중국 만주 연변지역의 개방 이후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국내에 체류하며 당해야 했던 인간차별과 모멸 행위, 여기서 비롯된 한국인 증오현상을 뚜렷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빈부양극화의 한국사회가 보여준 인간차별에 견디다 못한 숱한 연변 아줌마와 아저씨들의 비애와 비탄 그리고 증오심을 십분 이해하고 동감했었다.

우리 국민들, 지도자이건 민초들이건, 우리는 통일할 준비가 돼 있는가? 마음으로,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북녘동포들과 더불어 살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남쪽에서 해오던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천민자본주의 짓거리로 자기들만 잘 먹고 돈 잘 버는 통일인가? 북녘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미국 트럼프 따위가 언제 어떻게 더 망치려들지 우리 민초들은 일찍이 경험한 바 있다.

한반도 신뢰형성의 시작은 식량과 농업협력에 있다. 지난해 10월 ‘농사직썰’을 통해 했던 말을 지금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상황이다. 당시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두 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이어 6.12 북미정상회담 성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 간 신뢰형성의 시작은 무엇보다 식량과 농업협력에 있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수산리의 들녘에서 한 농부가 뜬 모가 생긴 자리에 다시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두 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이어 6.12 북미정상회담 성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 간 신뢰형성의 시작은 무엇보다 식량과 농업협력에 있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수산리의 들녘에서 한 농부가 뜬 모가 생긴 자리에 다시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반도 신뢰형성의 시작, 식량과 농업협력

한반도의 문제는 이 곳에서 5,000여 년 간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우리 겨레 모두의 문제이며 그 위기 해소가 문재인정부의 역사적 소명이다. 필자는 감히 그 해법의 단초(실마리)를 ‘쌀’ 공여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지난해 ‘농사직썰’란에 남북 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신뢰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며 식량과 농업협력이 그 첫째 수단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대저 분단된 나라에서 평화와 통일을 바라보려면 무엇보다도 서로간의 ‘신뢰(信賴)'관계를 튼튼히 쌓는 일이 필요충분조건이다. 확실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남북 간의 현안문제를 논의하고 협상을 해야 진정성 있는 양보와 타협이 가능하다. 신뢰관계는 단순히 말과 구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주 오고 가고, 만나고, 주고받고 나누는 과정에 신뢰의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이다. 적게 가진 측에 대해 많이 가진 측이 먼저 손길을 내밀어 조건 없이 나누고 돕는 사이에 믿음이 싹트는 것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불화하던 형제간에도 또는 서로 싸우던 지역 간, 조직 간 모든 인간관계에서 배려와 나눔이 먼저 행해져야 신뢰관계가 형성된다. 마찬가지로 남북 간의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핵문제, 인권문제 등 거창하고 장기적인 정치 군사 부문의 협의도 가능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도주의와 민생 살리기에 기반한 남북 간 식량·농업 협력이 우선돼야함을 뜻한다. 고기 낚는 방법과 수단의 제공은 그 다음에 뒤따른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든지 남북경제연합 또는 북핵 해소와 동북아 경제협력 문제 등은 그 다음, 다음에 협의될 사안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신뢰는 인권과 인도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 즉 배고픔과 가난으로부터 상대측을 배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바꿔 말해, 남북관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재개는 인도주의와 생태주의 차원의 식량·농업분야의 협력부터 먼저 시작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남쪽에도 도움이 되고 북쪽에도 도움이 되는 농림수산분야 협력사업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현 단계 남북의 경제사회현상을 감안할 때에 쌀이 그 첫째이며 으뜸이다.

남쪽에 남는 쌀·북쪽에 모자른 쌀

자의 건 타의 건, 남쪽은 쌀이 남아 골치를 앓고, 북쪽은 모자라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고통을 받고 있다.

즉, 남쪽은 지난 정권의 WTO 협상 실패로 해마다 40여만 톤의 외미를 의무적으로 사들여 와야 하며 게다가 쌀시장이 완전개방 돼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미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와 국내 쌀값은 80㎏ 가마당 13만 원대, 이른바 25년 전의 가격대로 뚝 떨어져 농가경제는 해마다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어언 재고량은 200만 톤 수준으로 쌓이고 정부의 재고미 보관비용은 10만 톤당 연간 300억원, 천문학적이다. 주조용, 제과용, 심지어 가축사료로 소비해야 하는 처치가 곤란하다 못해 골칫거리이다.

문재인정부는 쌀값을 최고 15만원대로 회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올 수확기엔 무려 쌀 75만 톤을, 그러나 농민단체에서 25만 톤을 더해 총 100만 톤을 시장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그밖에도 정부는 2019년까지 쌀 재배면적 10만㏊를 추가 감축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이미 올해 벼 재배면적 감축목표 3만5,000㏊(자연감소 1만5,000㏊ 포함)를 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휴경하거나 타작물 재배로 전환한 논(沓)이 투기적 용도로 전환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단 타용도로 전환되면 다시 수전(水田, 논)으로 바뀌기는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 남북이 갑자기 통일이 되거나 또는 외국의 쌀 생산 작황 및 수송사정이 악화될 경우 일반 서민들이 맞닥뜨릴 식량 조달 애로상황은 짐작하기조차 겁이 난다.

반면, 북녘 땅의 식량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UN/FAO의 최근 추정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현재 식량총생산량이 정곡기준 480만 톤 내외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식량수요량 650만 톤에 크게 미달한다. (그래도 식량자급률은 남한의 22.4% 보다 훨씬 높은 약 73.8% 정도이다.) 다만, 북한 주민을 근근이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양곡 수요량을 550만 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약 70만 톤 안팎이 부족하다.

그러나 외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족분의 식량을 제대로 사들여오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해마다 굶주리는 사람이 속출하고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국제식량계획기구가 보고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두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비료 한 바가지, 쌀 한 톨을 지원하지 않았다.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근혜’와는 달라야 한다.

지난 4일 충북 괴산군 사리면에 위치한 백마권역활성화센터 인근 통일쌀 경작지에서 열린 ‘전농 충북도연맹 창립 28주년 기념 2018 통일쌀 모내기’에 참석한 농민, 노동자, 시민들이 한반도 단일기 모양으로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4일 충북 괴산군 사리면에 위치한 백마권역활성화센터 인근 통일쌀 경작지에서 열린 ‘전농 충북도연맹 창립 28주년 기념 2018 통일쌀 모내기’에 참석한 농민, 노동자, 시민들이 한반도 단일기 모양으로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쌀, 한반도 위기 해소의 돌파구

지난해 9월 농민신문은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보수적 언론인 한 분(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김영희씨)의 특별기고 ‘한반도 위기 해소에 쌀을 활용하자’는 칼럼을 싣고 있다. 주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군사적인 대치와 대결로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도 없고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하는 상생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결국 기댈 곳은 풀뿌리 수준의 사회·경제 교류뿐이다. 쌀이 모자라는 북한, 쌀이 너무 많이 남아서 걱정인 남한이 쌀을 매개로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진공상태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탁론이다. 필자의 평소 주장과 한 치의 차이가 없다. 현 단계 한반도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다. 남한도 살고 북한도 살며 미국에도 나쁘지 않은 탁론이다.

이외에도 남북 간에 상호 이익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그리하여 장차 남북 신뢰관계 형성에 근간이 되는 농림수산분야의 상호 협력사업들을 열거하자면 부지기수이다. 북한에 식목사업과 양묘사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산림분야 협력은 국제적으로 탄소배출권을 우리나라가 행사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사례이다. 국내 환경오염 대처 차원에서 남한에 넘쳐나는 가축분뇨와 남은 음식 등을 활용해 만든 유기질퇴비를 북한에 보내기 운동 역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 및 농업분야 협력사업이다.

그밖에 남측의 선진 영농자재와 기술지원, 비닐하우스 고등원예 사업 및 양돈 등 축산분야(한우 및 산양 등 풀사료 가축)에서의 협력은 서로 간에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남북은 남쪽의 쌀농사, 북쪽의 밭농사로 서로 보완관계를 이뤄왔으나, 지금은 둘 다 저조하다. 보완적인 협력이 절실하다.

또한 수산분야 중에서 공동 양식어장 사업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대단히 유망한 협력분야이다. 남측의 기술과 자재 제공, 북측의 노동력 및 무오염의 연안 바다 제공으로 막대한 어패류와 해조류 생산이 가능하다. 그 판매처와 수출 가능성도 막대하다.

이 중에서도 당면한 한반도 위기를 당장 돌파할 출구로 남쪽의 쌀과 북쪽 특산품의 맞교환 사업이 단연 으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이 계획을 대담하게 수용하고 실행하길 바란다. 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정권이 되기를 민족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의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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