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사과 주산지인 충남 예산의 한 사과 생산 특화 마을. 외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장과 숙박시설, 공동저장창고 등을 갖춰 제법 그럴 듯하게 6차 산업에 부응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런 체험 마을이나 권역형 사업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한 뜻으로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마을에선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보조 사업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지 못하면서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과 저장용 공동 창고가 문제였다.
이 마을의 공용 저온저장고는 이름이 무색하게 사실상 주민들이 사용을 꺼려하고 있었다. 마을을 돌며 만난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창고는 사실상 개인용’이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우린 전혀 안 써요. 몇몇만 쓰는 것 같던데…. 사실 나도 쓰려고 했는데 못 그랬어. 근데 이건 왜 물어봐요?”
내용을 묻기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대답하는 사람도 조심스러워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한 여성농민은 불만을 가진 듯한 느낌이었지만 행여나 자신의 발언이 문제를 일으킬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한사코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그를 뒤로하고 더 자세한 내막을 찾으러 나섰다. 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과수원에서 나무를 돌보고 있는 또 다른 여성농민을 붙잡고 물어본다.
“창고가 있지. 근데 사이가 틀어져서 이젠 안 써.”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끼리 공간 배분 문제로 분쟁이 생긴 것이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뜸을 들이던 그는 어디서 나왔냐고 묻더니 신문기자라는 말에 진짜 이유를 얘기했다.
“창고가 개인 부지에 있고 들어가는 걸 땅 주인이 싫어하는데 어떡해. 결국 나라 돈으로 자기 창고 지은 그 사람만 호강한 거지 뭐. 우리는 우리 돈으로 창고 지어서 따로 쓰는데.”
또 다른 한 사람은 실상을 알려주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창고가 개인 부지에 있으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더라고. 왜 그런 거 있잖아. 들어가게는 해주는데 묘하게 싫은 기색 내보이는 거. 몇 번 쓰다가 결국은 포기했어. 왜 공용으로 쓰라고 사 주는 농기계도 그렇고 못자리 하라고 짓는 하우스도 그렇고 결국은 다 이런 식이야.”
이 농민은 작년엔 나름의 판로를 찾아 수확기에 사과를 팔았지만 저장고를 쓸 수 없는 것을 여전히 아쉬워하면서도, ‘마을에서 쫓겨날까봐 무섭다’며 마을 이름과 자기 이름을 싣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마을 이장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해보니 “여럿이 잘 쓰고 있다”는 무뚝뚝한 답변만 돌아온다.
예산군청 관계자는 10년 전 사과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가 지어진 뒤로는 저장고 보조 사업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예산군 내 다른 지역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농민 우성진·이희만 씨는 “예산에서 APC가 큰 규모와 복합적인 기능을 토대로 출하유도를 하고 있긴 하지만 농민들이 원하는 물량을 전부 수용할 수 없는 만큼 개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허경만 씨 등 응봉면에서 만난 농민들은 “응봉면에도 농협에서 지은 공동창고가 있었지만 여럿이서 쓰기 번거로워 그 용도로 쓰이지 않은지 오래됐다”며 “고령이고 규모 작은 농가들이 저장 능력을 갖추는 건 판로를 찾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