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도 뺏겼는데, 농민도 아니라고?”

평택 대추리 고령농들의 하소연 … 정부·지자체·농협의 세심한 배려 필요

  • 입력 2018.06.15 13:33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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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12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의 평화마을 경로당에서 주민들이 농지 강제수용 및 조합원 자격 논란에 대한 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의 평화마을 경로당에서 주민들이 농지 강제수용 및 조합원 자격 논란에 대한 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나라에서 농지까지 빼앗아 놓고, 이제 농민 자격까지 없다고 하니 원통하죠. 우리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지난 12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에 위치한 ‘평화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고령농민들의 목소리다.

이 마을은 2004년부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로 4년을 싸우다 대추리 등에서 쫓겨난 44농가가 새롭게 터를 잡은 곳이다. 고향마을을 잊지 못해 행정명인 노와리를 대추리로 바꾸고자 백방으로 뛰었지만 아직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 안쪽에 ‘평화마을 대추리’라는 큼지막한 비석을 세운 것도 그래서다. 그나마 ‘이번 내리실 역은 평화마을 대추리’라는 버스 안내방송이 이들에겐 작은 위안이다.

이날 경로당에서 만난 강권석(78)씨와 고령의 여성농민들은 억울하다는 하소연과 함께 울분 섞인 성토를 쏟아냈다. 정든 고향땅을 빼앗긴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운데 지역농협의 조합원 자격까지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서다.

이들이 노와리로 이주하며 산 농지는 가구당 100평의 밭이 전부다. 더 사고 싶어도 100평으로 정부가 제한했다. 다른 농지를 구하고 싶어도 이미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온 터줏대감들이 있는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농업인 자격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301평의 농지가 있어야 한다. 결국 농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농업경영주와의 고용계약서를 매년 제시해야 한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이들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변동이 있으면 신고하게끔 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평화마을 대추리’ 이장인 신종원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 부의장은 “어려운 시절 농협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는데 농지가 강제 수용된 상황에서 조합원까지 그만둬라 그러니까 배신감을 느끼시는 분이 많다”며 “농민조합원이 없으면 농협도 어려워진다”고 경고했다.

이날 만난 배연서 팽성농협 조합장도 “고령농들의 울분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최대한 농업인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1일 장관 고시를 개정, 지역농축협이 정관 변경을 통해 명예조합원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농업인 자격 강화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을 반영한 조치다.

농업인 자격 강화로 인해 고령농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무자격조합원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도 강화도 중요하지만, 한국 농업과 농협을 지켜온 고령농의 마음을 보듬는 정부와 지자체, 농협의 세심한 배려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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