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권력의 이동

  • 입력 2018.06.17 11:45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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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수확한 마늘을 창고로 들이고 못자리까지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텃밭에 열린 오이와 애호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새 많이도 자라서 달달한 첫물오이나 첫물애호박 등으로 밥상을 차리니 여름 맛이 납니다. 큰일은 끝났다 하지만 그러고도 이런저런 집안일들이 널브러져 있고 돌봐야할 농작물들이 많네요.

사실 주농사와 텃밭농사에 드는 잔손은 거의 어머니의 손을 거칩니다. 한여름 입맛을 돋우어 주는 동부콩이며 겨울간식 고구마나 일 년 내내 김치에 넣어먹는 생강농사는 내손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날로 먹는 셈입니다. 순전히 어머니의 노동에 힘을 입고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수확한 마늘이나 고추 등을 손보는 일까지도 상당수 담당하십니다. 그러니 여전히 진정한 농꾼이시지요.

농사꾼에게 최고의 권력은 농사일에서 나오고 농사일을 담당하는 만큼 큰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은 어머니께서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법한데 어쩐지 기력이 이전만 못 하십니다. 다른 집보다 농사일이 쳐지면 동동거리시며 서두르지 않는다고 식전 댓바람부터 언성을 높이시고, 농사구조가 달라진 것은 고려도 않고서는 여자가 할 일을 남자가 한다고 나무라시던가, 저녁밥이 늦다고 화를 내시곤 하셔서 삶이 팽팽한 맛이 나더니 요사이는 많이도 달라지셨습니다.

일이 늦어도 밥이 늦어도 그러려니 하십니다. 생각이사 달라졌을 리 만무할 것이고 아마도 노쇠해지신 탓일 겁니다. 조금 전 기억도 언뜻 언뜻 놓치는 일도 잦습니다. 노기어린 시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그리도 힘들고 싫더니 어느새 그 마음은 저 멀리 달아나고 애잔한 마음이 생깁니다. 생각 없이 던지는 여러 말들도 무심히 들립니다.

그 동안의 갈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이러고 말 것을 왜 그리 모질게 하셨냐고 살짝 등짝을 때려주고 싶은데 어쩐지 슬픕니다. 당신 또한 섬 산골로 시집오셔서 돌밭일구며 홀시아버지 모시고 자식들 키우는 그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탱해 오시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 힘겨움으로 말미암아 삶의 막바지에 당신며느리에게 감정을 이입하셨던 게지요. 나, 너무 힘들었다고, 너도 얼마나 힘들겠냐고 다독거려 주셨으면 더없이 좋았을 마지막 세월을, 그 여유가 없이 당신도 나도 아픈 시간을 보냈네요. 대게 우리의 어머니가 걸어왔던 것처럼요.

어머니께서 인정하시든 말든 이제 내 세상 쯤 되어 갑니다. 우리 집 권력에 변동이 생기는 것이지요. 나는 지난날을 탓하지 않고 내일을 보며 가정의 화목과 가족 구성원 저마다의 행복을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그리해야 되겠지요?

지방선거에서도 엄청난 권력의 변화가 있었네요. 그래도 농민들에게는 높기 만한 권력의 문턱이 더 낮은 데로 임해야, 소농도 대농도 힘들고 불안한 이 시대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세바람과 국민들의 눈높이의 변화에 힘입어 주어진 권력의 변화에 자만하지 않고서 국민들의, 농민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야겠지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역에서부터 같이 머리 맞대고 살길을 찾아봅시다. 달라진 권력은 방법도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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