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이 수용대상인지조차 몰랐다”

전북 완주군 2차 테크노밸리 조성 과정에 쑥대밭 된 마을 민심
산단 공공수용에 ‘끼워넣기’ … 마을 전체 반대도 소용없어

  • 입력 2018.06.10 11:33
  • 수정 2018.06.10 11:34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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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토지보상법의 선을 넘는 강제성과 미흡한 보상규정이 각지에서 해마다 분쟁과 반발을 낳고 있다. 농촌과 농민이 보기엔 농지를 빼앗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다양한 피해 사례를 통해 현 토지보상법의 문제점을 들춰보고, 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좋을지 그 방향을 탐구해 본다. 한우준 기자

 

①공익사업 앞세운 토지수용, 설 곳 잃는 농민

②‘공공시설’ 둔갑해 농지 빼앗은 골프장

③“내 땅이 수용대상인지조차 몰랐다”

봉동읍 둔산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병식씨가 아들 박승엽씨와 함께 신봉 미니복합타운 예정지구 내 자신의 비닐하우스에 철거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달고 있다. 이 일대는 현재 완주군 측이 수용절차를 진행하면서 이를 막으려는 주민과 마찰을 빚고 있다.
봉동읍 둔산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병식씨가 아들 박승엽씨와 함께 신봉 미니복합타운 예정지구 내 자신의 비닐하우스에 철거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달고 있다. 이 일대는 현재 완주군 측이 수용절차를 진행하면서 이를 막으려는 주민과 마찰을 빚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은 지난 1995년 봉동읍에 조성한 완주산업단지가 안착에 성공하자 군내 2차 산업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지난 2013년 완주산단 바로 옆에 조성된 완주테크노밸리 역시 100%에 가까운 분양률을 달성하자 구역을 추가로 확장하는 ‘테크노밸리 2단지’ 사업을 추진해 오는 2021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완주군은 이 지역 사업체 임직원들을 군내에 잡아둘 수 있는 정주여건을 조성할 목적으로 단지 인근 신봉마을 앞에 주거지역을 건설하는 ‘미니복합타운’ 사업도 함께 추진했다. 문제는 어느 샌가 신봉 미니복합타운이 2차 테크노밸리 단지와 한데 묶여 추진되는 것으로 사업계획이 변경되면서 발생했다.

신봉지역 주민들은 미니복합타운이 건설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주거지구로 계획된 만큼 산업단지와 함께 묶여 공공토지계획의 수용대상이 될 거란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곳 주민대책위원으로 활동한 이현웅(73)씨는 “처음에는 땅을 내어주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과, 그래도 완주군의 발전을 위한 사업인데 우리가 어디 가서 새 땅을 구할 수 있도록 적절히 보상해준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과 지주들은 이곳 계획이 2차 테크노밸리 단지 계획에 편입됐다는 사실을 감정평가가 이뤄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도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 조인호(57)씨는 “난데없이 날아 든 보상내역서를 받고 나서야 수용 대상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설상가상으로 사실을 알게 된 동시에 받아든 감정가격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관이 제시한 보상가격과 실거래가격 간의 격차는 이번 사례에서도 분쟁의 핵심이었다. 감정에 따른 보상 가격은 평당 15만원이 안 되는 수준. 2,300평을 갖고 있는 주민대책위원 이현웅(73)씨는 “10년 전에 중개인들이 평당 20만원에 팔라고 해도 내놓지 않았던 땅”이라며 “지금은 실거래가가 훨씬 더 높은데 이렇게 빼앗아 가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계획관리지역에 속한 김인순(57)씨의 논 1,300평 역시 보상가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김씨는 “이 돈으로는 인근에서 500평 농사도 짓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봉동읍 일대 토지 시세를 살펴보면 테크노밸리에서 더 먼 곳에 위치한 농지들도 높게는 평당 5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신봉지역은 똘똘 뭉쳐 반대 투쟁에 나섰지만 현재는 거의 저항에 손을 놓은 상태다. 2차 테크노밸리 단지(약 172만㎡)에 비해 신봉 미니복합타운(약 40만㎡)은 1/4도 안 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즉 두 지역이 한데 묶인 채 2차 테크노밸리 단지 토지주 대부분이 수용에 찬성할 경우 신봉마을 주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수용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현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전체 가운데 70%의 동의만 얻으면 수용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봉지역과 동떨어진 위치의 지주 다수가 보상가와 집단이주 계획에 합의하면서, 이곳 주민들은 통일된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절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직 포기하지 않고 남아 있는 주민들은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연로한 70~80대의 농민인데다 법과 행정에 어두워 더 이상 집단적으로는 싸우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조씨와 함께 완주군을 상대로 이주대책 미수립, 영농손실 보상 미지급 등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이고 있는 박병식(58)씨는 “국가를 상대로 싸워봤자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이 팽배하다”며 “내 땅을 지키려는 노력을 갖고 ‘보상 더 받아먹으려고 저런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지역 발전이 안 된다’고 욕하는 같은 군민들의 손가락질도 긴 싸움을 할 힘을 잃게 만든다”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이제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닌, 통보도 받지 못하고 재산권을 침해당한 나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소수의 주민들과 함께 행정소송 절차에도 돌입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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