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 피해, 적과 필요 없을 정도 … 내년 농사까지 ‘막막’

4월 초 이례적인 ‘영하권 저온’에 낙과 80% 달하기도
도장지 웃자라 결실은 물론 이듬해 수세 관리도 문제
재해별 특약으로 나뉜 보험, 피해 입증 어렵기로 정평

  • 입력 2018.06.09 23:01
  • 수정 2018.06.11 09:2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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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5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한 과수원에서 백강흠씨가 올 봄 발생한 냉해로 대부분의 열매가 낙과한 사과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백씨는 “평소라면 이 나무에 150여개는 달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한 과수원에서 백강흠씨가 올 봄 발생한 냉해로 대부분의 열매가 낙과한 사과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백씨는 “평소라면 이 나무에 150여개는 달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못해도 나무 한 그루당 사과가 백오십 개는 달려 있어야 맞는 건데, 몇 개 달렸나 손꼽아 셀 수 있을 지경이고 세 개 달린 나무도 있더라. 세 개 달렸는데 뭘 솎아내겠나. 그나마 붙어 있던 것도 떨어지는 판국에….”

지난 5일 경북 봉화군에서 만난 사과 재배 농민의 말이다.

겨울 한파 및 이상 저온, 강우 등 여러 요인으로 최근 충남·북과 경남·북 등 사과 주산지 전역에선 농민들 한숨이 가득하다. 지난 4월 7~8일 영하권의 이상 저온으로 꽃눈이 냉해를 입어 착과량 자체도 적었던데다 5월 하순이 되자 열매가 노랗게 변하고 씨방이 말라 낙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해는 사과뿐 아니라 배, 복숭아, 자두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경북 일부 지역의 경우 지난 5월 말 우박까지 내려 채소 등으로 피해가 확대되는 추세다.

농식품부는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현상을 인지하고 지난달 31일 긴급 실태조사 및 원인 분석에 나섰다. 농촌진흥청 등 과수전문가를 현지에 급파해 조사한 결과, 낙과는 지난해 기상여건과 금년 4월 초 저온 등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여름 잦은 강우와 가을철 지속된 고온으로 저장양분이 제대로 축적되지 않았고 겨울 한파로 수세가 약해졌을 거라 판단 중이다. 게다가 올해 초 극심했던 가뭄과 개화기인 4월 초 저온으로 수정이 나쁜 상태에서 최근 야간 저온 등 급격한 기온변화가 복합 작용했을 거라고 설명했다.

지난 5일 봉화군 춘양면에서 30년 넘게 사과를 재배 중인 농민 백강흠(55)씨를 만났다. 과원 8,000평 중 6,000평에 피해가 심각하다는 백씨는 “저온으로 평년보다 꽃은 덜 폈지만 사람을 사서 적과는 이미 마쳤다. 원래 나무마다 적과품이 오십 개 정도 나오는데 이번엔 열 개쯤 따낸 거 같다”며 “적과를 하고 난 뒤 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해 양분이 다 나무로 가고 있다. 벌써 도장지가 생겨 자라는데 마저 달려있는 열매는 잘 키울 수 있을지 또 내년을 위해 도장지를 관리하려면 일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걸 다 어떻게 할 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과수원에서 백강흠씨가 떨어진 사과를 반으로 쪼개 보이며 "지난 4월 이상 저온으로 종자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과수원에서 백강흠씨가 떨어진 사과를 반으로 쪼개 보이며 "지난 4월 이상 저온으로 종자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백씨는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하는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특약은 들지 않았다. 4년 전 특약에 가입했지만 보험회사가 보장 기간으로 명시한 5월 31일 이후에 냉해가 발생해 보장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백씨와 인근 농민들은 “냉해는 입증하기도 어려워 보험이 소용없단 걸 전부 안다. 냉해가 와도 태반이 보상을 못 받았다 하는데 누가 굳이 가입하겠냐”고 주장했다.

이렇듯 농민들 사이에선 농작물 재해보험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농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에 따르면 올해 봄동상해 특약을 가입한 농가 수는 보험 주 계약 가입 농가의 30%에 불과하다.

특정·종합위험에 재해별 특약?

사과·배·단감·떫은감의 경우 농가가 가입할 수 있는 농작물 재해보험은 특정위험보장과 종합위험 두 가지다. 두 보험이 대상으로 하는 품목은 과수 4종으로 동일하지만 가입 시기부터 보장 재해와 특약 등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우선 농민이 주로 가입하는 특정위험보장은 봄동상해와 집중호우까지 총 네 개의 특약이 있다. 현장에선 주 계약에 특약 한 가지만 더해도 주 계약만 가입할 때보다 보험료가 약 1.5배 비싸기 때문에 특약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농가가 급변하는 이상 기후에 대응하고자 특약 네 가지를 전부 선택하면 주 계약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하지만 종합위험에 가입한 농가는 별도의 특약 가입 없이도 냉해를 보장받을 수 있다. 적과 전에 발생한 냉해가 자연재해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 4년 차인 종합위험은 적과 전 자연재해와 조수해, 화재로 인한 과실의 감수량을 보장한다. 적과 후에는 태풍이나 강풍, 우박·집중호우 및 화재, 지진을 대상으로 하며 가을동상해와 일소피해는 특약 가입으로 보상 가능하다. 하지만 농민들은 대부분 종합위험과 그 가입 시기를 모르거나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특정위험보다 약 1.5배 비싼 보험료를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처럼 농가가 보험으로 냉해를 보장받는 방법엔 적과 전 종합위험도 있다. 하지만 현장 농민들은 이러한 보험 상품 자체를 몰라 가입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봉화군 춘양면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김태복(41)씨가 이에 해당한다.

김씨는 “농가 입장에서 냉해는 입증할 방도가 없다는 주변 말을 듣고 봄동상해 특약을 들지 않았다”며 “보험을 개선했다더니 이번에 봉화군은 상한이 적용돼 보험료율이 8.35%로 줄었다. 예년보다 보험비 부담이 적어진 만큼 특정위험보다 비싸더라도 종합위험으로 냉해까지 한 번에 보장된다는 걸 알았으면 당연히 가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현수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 4일 이상저온과 우박으로 피해가 큰 경북 군위군과 문경시를 방문해 상황 파악 및 농가 애로사항 청취에 나섰다. 김 차관은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신속히 영농으로 복귀하고 경영상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가능한 모든 지원 대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며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과수 피해농가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7월로 앞당기고 사과·배 봄동상해의 경우 특약이기 때문에 미가입 농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봄동상해를 주 계약에 포함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기준 전국의 과실 낙과 피해면적은 6,145ha로 집계됐다. 당초 5월 말까지 이상저온 피해 정밀조사를 마칠 예정이었던 농식품부는 피해가 뒤늦게 나타나자 오는 20일까지로 그 기간을 연장했다. 지자체가 정밀조사 결과를 보고한 이후 농식품부는 농촌진흥청이 규명한 낙과 원인에 따라 농가 지원 대책과 재해보험 적용 여부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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