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즐거움을 노래하지 못하는 까닭

이중기의 농사이야기 - 34

  • 입력 2008.05.25 20:03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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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햇볕은 강해도 바람이 많이 불어 그다지 더운 줄은 모르겠다. 일 하기에는 참 좋은 날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불온한 일기를 걱정하여 끙끙 앓으신다. 연일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우스 가온 포도농사를 짓는 재학이 형 말로는 하우스 온도를 10도에 맞춰 놓는데, 요즘도 새벽에 보일러가 돌아간단다. 하우스 안과 바깥 온도는 10도 정도 차이가 있는 걸로 최저온도는 2도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5월 말에 이 정도면 불온한 기후일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도 새벽마다 보일러는 돌아간다.

 복숭아 씨 솎기는 지지부진이다. 매년 오던 자천 아지매들은 동네 사과밭에 붙들려 며칠 후, 며칠 후 하면서 오지를 않는다. 유일하게 손전화를 가지고 있는 대동댁에게 전화를 했더니 “안만 갈라고 해도 동네 젊은 남자들이 남의 동네 일 할라 카믄 이사를 가라”고 해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다고 엄살을 떠는데 달리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다.

 혼자서 하는 일은 지겹기 짝이 없다. 복숭아 한 그루를 상대로  수 없이 사다리를 타고 나무 위로 오르내리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해야 하루 열 그루가 빠듯하다. 노동이 힘든 것이 아니라 일 걱정 때문에 힘이 들어 연방 담배만 피워 문다.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루 두 갑으로도 모자란다.

 “참 묵자.”

 용석이다. 어제는 마을 입구 밭에서 가까운 활수 점방에서 내가 막걸리를 샀더니 오늘은 용석이가 사들고 왔다. 요즘은 이 재미도 없으면 못 견딜 것이다. 나는 그늘이 제일 두터운 나무 아래 상자를 엎어 놓고 술상을 차린다. 막걸리 세 병에 사이다 두 병, 건빵 한 봉지다. 막걸리에는 사이다를 섞어야 제 맛이고 또 생목이 올라오지 않는다. 그리고 막걸리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늘 이렇게 마신다. 나는 종이 잔에 두 잔을 연커푸 비워버린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가듯 두 잔을 비워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천천히 마셔라, 누가 뺏어 먹나.”

 세 잔째를 들어 올리는 손을 용석이가 붙잡는다. 나와 그는 농사철만 돌아오면 홀아비 신세라 이런 중참 먹는 데는 이골이 났다. 더러는 마누라 눈치 볼 일이 없어 참을 먹다가 발동이 걸려 시내 술집으로 줄행랑을 놓기도 다반사였다.

 “상구에서 물을 이렇게나 퍼대이까 하구에는 가물지. 나도 물 좀 대자.”

 돌아보니 재학이 형이다. 재학이 형은 이 ‘새들’의 봇도감이다. 그래서 자주 온 들을 쏘다니며 물 관리를 하느라 모내기철만 되면 정신없이 바쁘다. 바쁜 것에 비해 하구 사람들에게 욕도 그만치 얻어먹는다.

 “하루 벌어 한 달을 먹는 이 시절에 술타령 하느라고 느그도 참 고생이 많다. 시간 익그덜랑 한 잔 따라봐라.”

 셋은 아예 퍼질러 앉아버린다. 막걸리는 금방 동이 나고 용석이가 ‘녹전 카페’로 전화를 걸어 술 주문을 한다. 농사일이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는 것이 우리들의 지론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담배 한 대 피울 참에 술이 왔고 봇도감은 ‘공익’을 팽개친 채 불콰해졌다.

 “근데 씨발, 비료 사러 가이 없단다. 이틀 뒤에 오면 스무 포 준다는데 어이, 농민회 회장 이래도 되나? 작년 연말에 비료값 그만치나 올려놓고 또 올린단다. 어이, 이래도 되나?”

 요즘 들어 비료 때문에 농민들은 부글부글 끓는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요즘 돌아가는 정부 꼬락서니는 맞아도 많이 맞아야 될 것 같다. 영어 몰입교육에다 대운하 문제,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해서 시끄럽더니 난데없는 소고기(우리는 ‘쇠고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원자폭탄을 터트려버렸다. 거기에다 ‘비료’ 폭탄을 발등에다 터트렸으니 농사꾼들은 설상가상이다. 원자재 값 인상을 이유로 이 농번기에 농민들을 절망 속으로 내모는 짓거리는 노무현정권도 하지 않은 일이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 정부를 북어 두드리듯 두들겨 패도 도무지 야들야들 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놈의 비료 때문에 술 마시느라 오후 반나절만 땡땡이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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