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 연속 인터뷰④] 이영수 경북 영천시농민회 사무국장
[‘농협 개혁’ 연속 인터뷰④] 이영수 경북 영천시농민회 사무국장
  • 박경철 기자
  • 승인 2018.06.08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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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회부터 농협 개혁에 직접 뛰어들자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2016년 농협법 개정안 통과로 지난해 초 농협의 지주체제 전환이 완료됐다. 이후 새정부 출범과 맞물려 농민·사회단체도 농협 적폐 청산을 요구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또한 국회가 개정 농협법에서 부족한 부분을 논의하겠다고 만든 농협발전소위원회도 휴면 상태다. ‘농협 개혁’ 목소리가 잦아드는 형국이지만 “농협이 문제”라는 농민들의 성토는 여전하다. 매월 농협 전문가들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농협 개혁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재 농협 주인은 농협 임직원 … ‘농협 공부방’ 운영하며 농협 개혁 ‘군불’

이영수 경북 영천시농민회 사무국장
이영수 경북 영천시농민회 사무국장

지역의 농민들과 농협 공부방을 운영하며 농협 개혁의 군불을 지피는 이가 있다. 이영수 경북 영천시농민회 사무국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지역농협인 임고농협 이사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난 5일 이 사무국장의 삶터인 사람사는 농장에서 그를 만났다. 자신은 농협 전문가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가 토해낸 농협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전문가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

그는 우선 한국농업에 있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개방농정이 외부적 화두였다면 내부적으로는 단연코 ‘농협’이라고 밝혔다. 흔히들 농협만 바로 서면 이 땅의 농업 문제가 없다고 할 정도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농업계의 가장 큰 화두가 농협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농대를 다닌 그는 학사 논문의 주제를 한국농업협동조합의 역사로 잡을 만큼 농협에 관심이 많았다. 2000년대 초반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정책국장으로 있으며 협동조합개혁위원회 간사를 맡기도 했다.

그는 11년 전 내려온 현장에서 보수야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정도로 강한 경상도 특유의 정치색 속에서도 농협얘기만 나오면 달라지는 기현상을 목격했다고 한다. 농협 얘기면 밤새 술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농민들이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농협이 처한 현주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사무국장을 통해 농협의 현주소와 개혁 방법을 확인했다. 

- 농협중앙회의 현재 상태를 진단한다면.

농협은 일제시대 수탈대행이나 군부독재 시절 준행정기관 역할을 해온 역사가 있다. 한국농업을 대표한다며 민족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애국심을 호소하며 살아남았다. 지금의 농협은 재벌대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재벌 개혁은 화두가 돼도 더 엉망인 농협 문제는 묻혀있다. 정권의 시녀노릇, 돈세탁 의심을 받아도 무풍지대고, 대마불사(大馬不死, 대기업이 파산하면 부작용이 커 구제금융 등을 통해 결국 살아남는다는 뜻)다.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농협 개혁을 천명한 이유도 그래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농협이 센지 내가 센지 한판 붙어보자’는 표현까지 썼다. 결국 농협에 졌다. 정권마다 농협개혁위원회 등을 설치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농협과 타협, 조율 등을 거쳐 농협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온 게 현실이다. 농민단체와 농업계는 농협이 너무 돈놀이만 하니까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를 요구했지만, 결국 ‘죽 쒀서 개 준 꼴’이 됐다. 지주회사체제가 되며 기업으로서 완전히 자본주의에 안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회원농협의 이익과 무관하게 농협중앙회가 자체적인 수익구조를 고정화시켰고 독자생존이 가능해진 것이다. 농협은 이미 괴물이 됐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더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농민들의 조직이라지만 농협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거칠게 말하면 현재의 주인은 농협중앙회 임직원이다. 단순하게 지배구조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의원조합장들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건 간선제로 회장을 선출하는데다, 회원농협을 지도·관리·통제하는 도본부장이나 시군지부장은 직원들을 임명한다. 회원농협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게 농협중앙회인데 농협 임직원이 오히려 주인인 회원농협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경제사업 활성화도 완전히 의미가 퇴색했다. 회원농협과 농민조합원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농협중앙회, 경제·금융지주, 자회사가 배부른 것이다.

- 농협중앙회 개혁, 해법이 있다면.

20여년을 싸웠지만 농협이 조금씩 개선된 게 아니라 농민과 농업계의 바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갑갑함이 많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해야 된다.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농협이라는 자본과 시스템이 한국 농업에서 크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쨌든 회원농협과 그 조합원들이 아래서부터 주인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 농협중앙회든 회원농협이든 사람이 바꿔야 한다. 지역에서 농협 공부방을 하니 인근 3개면에도 공부방이 생겼다. 공부방 출신들이 이·감사도 하고 더디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외부적 충격도 필요하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에선 최소한 농협중앙회장 조합장 직선제 선출, 더 나가면 조합원 직선제까지 가야 한다. 이런 외부적 충격이 아니면 결코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도본부장과 시군지부장도 시군에 있는 회원농협에서 직선제로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지역에서 능력과 명망이 있는 조합장들이 농협을 이끌어갈 위치까지 갈 통로들이 철저히 차단돼 있다. 농협 개혁을 위해선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적쇄신부터 해야 한다.

- 농협 공부방 얘기도 궁금하다.

동네 형님들과 술만 먹으면 맨날 비슷한 얘기를 했다. 물론 치열했다. 그러다 우리도 생산적인 걸 해보자는 얘기가 됐다. 2014년 가을 남무현 전 불정농협 조합장 초청강연을 계기로 공부모임을 가졌다. 복숭아 공부도 하고, 그 주제 중 하나가 농협이었다. 적게는 4~5명, 대체적으로 10명씩 3년 동안 한 달에 세 번씩 한 번도 빠짐없이 꾸준히 했다. 복숭아 딸 때는 상갓집도 안 간다는데 오히려 형님·형수님들이 불이 붙었다. 책을 30~40년 만에 본다는 분들도 있었다.

우선 농협 정관을 폈다. 보다보니 새로운 게 나오더라. 예를 들어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고, 총회자료는 언제까지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번 해보자고 해서 형님들이 농협에 가 이사회 회의록을 달라고 하니 관례상 못준다고 했다. ‘관례가 정관을 이기냐’고 따져 물었다. 공부방 회원들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의 자각을 거쳐 농민들의 단결된 힘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런 힘으로 최근 임고농협 이사 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농협중앙회나 지역농협의 올바른 상은 모르는 게 아니다. 이미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만들까라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여전히 금권선거가 판을 치고, 돈을 쓰지 않고선 당선될 수 없다는 게 정석처럼 돼 있다. 노골적으로 이·감사 회의 가서 수당 한 번에 20~30만원 받으면 4년 동안 돈이 1,000만원이 넘으니 그걸 써야 공평하다고 한다. 특히 경상도의 경우 어떤 선거든 져본 적이 없는 선거조직이 막강하다. 돈만 내리면 탁탁 돌아간다. 또한 대의원도 마을에서 고생한 새마을지도자나 부녀회장 등이 회의수당을 타기 위해 의례적으로 가는 자리가 됐다. 우리 농민이 스스로 농협의 주인이 못되니 결국 종인 조합장과 직원이 주인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결국 지역농협도 돈놀이로 배당 조금 더 챙겨주거나 대출을 많이 하면 조합장이 운영을 잘하는 것처럼 비쳐지게 된 것이다. 결국 끊임없이 조합원이 주인다운 조합원, 제 역할하는 대의원, 이·감사, 조합장 다운 조합장을 만들어야 한다.

- 내년 3월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있다.

솔직히 얘기하면 농민회는 권력에 가는 걸 금기시하고 터부시한다. 지금 이 시점에 맞는 걸까라는 고민이 든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현실가능성이 없다면 옳은 편에 서기 쉽지 않다. 더 많은 농민이 그 편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농민운동가들을 조직하고 교육하고 그런 역할을 우선시하는 건 맞지만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팔짱만 끼고 있을 순 없다. 농민회원들이 이장, 농협 대의원, 이·감사, 조합장이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다.

농민회원만이 아니라 능력있고 열정있는 농촌의 많은 젊은 사람들이 함께 도전하고 그 과정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이 솟아날 것이다.

농협이 협동조합 꼬리표를 떼고 재벌 대기업으로 가는 것을 붙들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농민들이 이것저것 재지 말고 과감하게 내가 사는 마을부터 조합장 선거에 도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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