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눈물의 양파

  • 입력 2018.06.08 11:20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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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양파 밭을 애써 돌아간다. 동네 분들이 “양파 때문에 어째?” 라고 걱정을 한다. “많은 양이 아니어서 괜찮다”고 웃어 보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눈물주머니가 새려고 한다. 지난달 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제일 좋다던 양파가 병에 걸려 잎이 새까맣게 말라 녹아내린다. 한 두 해 농사지은 것이 아니니 사실 이것쯤은 그냥 넘길 수 있다. 이보다 더 할 때도 많았다. 이 양파를 키우기 위해 작년 가을부터 들였던 남편과 나의 노동은 그냥 술 한 잔으로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가슴에 맺히는 것 한 가지가 있어서 좀 마음이 아프다. 볕이 몹시 따가웠던 작년 가을, 나를 도와준다고 작은 딸이 내려와서 말없이 사흘을 쪼그리고 앉아서 심고 갔던 양파였다. 딸의 작은 바람처럼 부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사그라드니 딸의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된 것 같아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조생종 양파가 나올 때부터 값 폭락으로 밭을 갈아엎느니 마느니 뒤숭숭하더니 만생종 양파를 수확할 요즘은 병해로 농민들 마음이 뒤숭숭하다. 잦은 비와 저온, 갑자기 닥쳐온 고온 등으로 노균병, 잎마름병, 무름병 등으로 이맘때는 시퍼런 잎을 달고 누워서 굵어져야 할 양파가 시커멓게 말라죽고 있다. 양파 주산지인 전남에서 나온 통계를 보니 병해가 심각한 면적이 전체 면적의 33%라고 한다.

기후나 동물의 피해, 전염병,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아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본 것이 비단 올해의 양파뿐만이 아니다. 농민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면 그 사연이 책을 쓸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농민 개인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참고 이겨 내던지 떠나던지….

홍수나 태풍 등 자연재해는 부족하지만 보험으로 보장을 한다고 하지만 올해 양파 같은 병해는 정부 차원에서 어떤 피해 대책도 없다. 우리야 양파가 주 소득원도 아니지만 주 소득원인 농가의 살림살이는 휘청할 것이다. 조금의 여유도 없는 빤한 살림살이에 한 해만 농사가 잘 못 되어도 그것은 빚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남의 일이 아니어서 마음이 아프다.

올해 같은 기후 속에서 병해를 농민 개인이 방제를 못 해서라거나 농민 개인이 농사를 잘 못 지어서 그렇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병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상황이었다. 이럴 경우 화학농약을 쓰지 않는 무농약이나 유기농가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물론 친환경농가라고 해서 병이 발생했는데 두 손 놓고 있지는 않는다. 우리 집 같은 경우도 눈앞에서 자꾸 잎이 말라가니 우리가 쓸 수 있는 천연농약은 몇 번이나 쳐 보았지만 병을 잡지는 못했다.

이럴 때마다 농사짓는 것이 재미없어진다. 다시 시작하기가 두려워진다. 더구나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자랑스러운 농부가 되겠다’던 당찬 포부는 슬그머니 뒤로 숨어 버리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아직 양파를 수확할 때가 안 되었지만 잎이 시커멓게 마른 양파를 밭에 두어봐야 마음만 아플 것 같아 뽑으려고 밭에 들어가 보았다. 마른 줄기 그 밑에 그래도 우리 딸 주먹만 한 동그란 양파가 달려있다. 이만큼이라도 키우기 위해 이 줄기는 얼마나 숨 가빴을까?

생명이다. 생명의 힘이다. 아직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비 그리고 가을의 바람이 남아 있으니 이 양파 뽑아내고 얼른 밭 준비해서 뒷그루로 들깨를 심어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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