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부가 논둑을 거닌다. 주황색 장화는 무릎까지 끌어올려 동여맸다. 허리에 비스듬히 감은 노끈엔 비닐포대를 접어 만든 간이주머니가 달려 있다. 주머니 안엔 모내기에 쓰였던 모가 담겨 있고. 모내기가 끝난 논은 물속에서 새순이 가지런히 돋았나, 싶을 정도다. 여러 가닥으로 나온 모가 하늘 향해 두 팔 벌리듯 서 있다. 부는 바람에 까닥까닥 흔들릴 때면 더할 나위 없이 앙증맞다. 잔잔한 논물은 봄날의 푸른 하늘과 구름, 녹음이 짙어가는 뒷산의 실루엣까지 제 것인 양 담고 있다.
이윽고 농부가 논으로 향한다. 꽤나 질퍽이는 진흙, 모와 모 사이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다시 모를 심는다. 이앙기로 심었으나 뜬 모가 발생한 자리다. 기계가 놓친 자리마다 농부의 투박한 손이 섬세하게 가 닿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보이는 법이여.” 켜켜이 쌓인 농사이력만 60여년, 팔순 농부의 시선을 따라간다. 여린 모를 쥔 농부의 손이 검다. 논이 품은 그림자마저 일한다. 지난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수산리의 들녘에서 한 농부가 뜬 모가 생긴 자리에 다시 모를 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