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 둔갑해 농지 빼앗은 골프장

[ 기획 ] 농지강제수용열전②
‘공익목적’으로 인정돼 민간 토지 강제수용 난립
뒤늦게 위헌 판결 … 발생된 피해는 구제 전무

  • 입력 2018.05.27 11:25
  • 수정 2018.05.30 11:4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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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토지보상법의 선을 넘는 강제성과 미흡한 보상규정이 각지에서 해마다 분쟁과 반발을 낳고 있다. 농촌과 농민이 보기엔 농지를 빼앗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다양한 피해 사례를 통해 현 토지보상법의 문제점을 들춰보고, 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좋을지 그 방향을 탐구해 본다. 한우준 기자

 

①공익사업 앞세운 토지수용, 설 곳 잃는 농민

②‘공공시설’ 둔갑해 농지 빼앗은 골프장

유기농마을 코앞에 골프장이 생기다

지난 2007년, 강원도 홍천군 서면 두미리 등 4개 마을이 ‘유기농 생태마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국비 65억원을 들여 지역순환형 생태마을을 조성, 지자체와 대학의 지원 아래 친환경농산물·유기축산물 생산 및 그에 연계한 외부인의 생태관광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유기농 생태마을이라는 이름은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놓였다. 인근에 생긴 골프장 때문이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수도권과 가까워진 이점을 살려 홍천에선 2010년대 들어 골프장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서울에 가장 가까운 서면도 당연지사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서면에만 이미 세 개의 골프장이 있고, 한 곳이 또 건설 중이다.

지난 21일 방문한 두미리에선 위기감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 2013년 마을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대명리조트가 소노펠리체 골프장을 지으며 마을은 온갖 피해를 안게 됐다. 이곳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이병교씨는 “필드 유지를 위해 엄청난 양의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골프장이 생기면 바깥에선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유기농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실제로 골프장에서 내려오는 물은 겉보기엔 깨끗하지만 이젠 예전에 살던 고기를 찾을 수 없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소노펠리체 골프장이 개장하던 시기에 마침 표고버섯 농사를 시작한 신모씨는 골프장에서 내려온 물을 급수했다가 버섯은 구경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대명리조트를 상대로 법정공방을 벌일 예정이다. 그는 “민사소송은 변호사가 할 일이고, 이거(환경파괴) 원상복구는 내가 할 일”이라며 군청에 가서 차량에 부착할 커다란 현수막을 보여줬다.

친환경농업을 지키고자 이 지역의 농산물을 유통하는 한살림도 함께 나서서 도왔지만, 긴 싸움에 대한 부담과 피로감을 느낀 주민들은 마을이 갈라지는 것을 우려해 결국 골프장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징검다리 휴일이었던 이날, 소노펠리체와 샤인데일 등 인근 골프장의 주차장은 외지에서 온 차량들로 성황을 이루며 농민들의 근심스런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두미리에 골프장이 건설된 이후 방류된 농약성분으로 인해 버섯농사에 피해를 입었다며 장기 투쟁을 예고하고 있는 한 주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두미리에 골프장이 건설된 이후 방류된 농약성분으로 인해 버섯농사에 피해를 입었다며 장기 투쟁을 예고하고 있는 한 주민.

 

수용권한 업은 골프장, 천하무적

난립하는 골프장에 농촌이 이렇게도 무방비한 것은 토지보상법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놀랍게도 골프장들은 국토계획법과 토지보상법에 의거, ‘공공성’을 인정받아 민간 소유 토지를 수용해가며 건설됐다. 법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어 민간이 민간의 토지를 손쉽게 빼앗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 연재의 이기인 할머니와 같은 사례가 속출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두미리에 임야 1만4,000평을 가지고 있었던 신창철씨는 땅을 공시지가에 모두 넘겨야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었던 조상묘 4기까지 어떤 합의도 없이 무단으로 파헤쳐지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수년 간 법원을 들락날락하며 겨우 얻어낸 민사소송 판결에서 사법부는 분묘발굴을 주도한 대명의 법무대리인에게 지난 2016년 고작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신씨는 “분묘훼손이 아니라며 여러 번 말을 바꾼 사실이 현장검증을 통해 다 드러났는데도 유골오욕을 인정하지 않는 판사 그리고 이에 대해 항소조차 하지 않는 검사를 보며 모두가 한통속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제 신씨는 연거푸 패소를 당하면서도 땅을 되찾기 위한 행정소송에 인생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인근 동막리에서도 골프장이 개장하며 묘지가 파헤쳐지고 뼛조각이 나뒹구는 사례가 있었다. 이곳엔 지난 2015년 샤인데일 골프장이 개장하며 16가구가 수용 피해를 당했다. 변정애씨 가족은 20년 가까이 지킨 자신의 2,000평 땅을 시가의 4분의 1의 수준의 가격에 내준 것도 모자라, 농원에서 기르고 있던 변씨 소유의 조경수들까지 모두 골프장 측에서 가져가버렸다.

수용에 끝까지 저항했던 변씨는 “홍천에서 농사만 짓는 사람들이 거기 가서 골프치고 리조트에서 놀 일이 뭐가 있나. 골프장이 공공시설이라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골프장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임야를 강제로 수용 당한 신창철씨(왼쪽)가 건설사에 의해 조상묘지가 파헤쳐진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골프장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임야를 강제로 수용 당한 신창철씨(왼쪽)가 건설사에 의해 조상묘지가 파헤쳐진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불완전한 개정, 피해구제책은 전무

민간사업자의 영리 추구를 위해 운영될 것이 뻔한 골프장과 리조트가 어떻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토지보상 법률과 제도를 이용해 민간의 재산권을 침해하며 조성될 수 있었을까?

헌법 제23조 3항에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토지보상법인데, 얼마 전까진 이 토지보상법에 관계없이 각 개별법에서도 수용조항을 넣는 것이 가능했다. 개별법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공공목적’이라는 간판을 건 채 수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목록에 실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골프장을 공공체육시설로 인정, 무분별한 수용절차 진행을 돕고 있었다. 사업자들은 자가 구매, 명의신탁 등을 이용해 법이 정한 동의인 수(절반)와 면적(80%)만 확보하면 나머지 땅은 수용절차를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지난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골프장 토지수용 허용으로 인한 수용현황은 2003년부터 5년간에만 342건, 면적으로는 161만4,061㎡에 이르렀다.

시민단체의 빗발치는 개정 요구 속에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1년 골프장을 공익사업으로 볼 수 없다며 위헌이라 판결하면서 국토계획법을 근거로 한 골프장의 토지수용은 2013년 이후로 금지됐다. 그러나 기존 법의 유예기간인 2012년 12월 31일 이전에 추진된 사안에 대해서는 해당사항이 없어 개정 이후에도 피해는 계속됐으며, 행정부는 이미 수용절차를 겪으며 발생한 재산 피해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2015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발의한 토지보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토지보상법 별지에 실린 수용조항을 허용하는 개별법 목록을 수정하지 않고는 개별법에 수용조항을 신설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제동이 걸리기 전 이미 110개의 개별법에 수용조항 신설이 허용됐다. 토지수용권한을 갖춘 개별법은 지난 2003년엔 49개에 불과했다. 아직도 골프장이나 리조트와 같은 수익 시설 건설 사업이 또 다른 개별법을 통해 수용절차를 거쳐 추진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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