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번기에는 공동급식으로 가즈아

  • 입력 2018.05.25 12:23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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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늘 바쁘게 살지만, 지금과 같은 농번기가 아닐 때는 그나마 한가한 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오죽하면 여우가 애를 업고가도 모르고, 얼마나 동동거렸으면 누운 송장도 돕고 싶고, 생명 없는 부지깽이도 나섰으면 했겠습니까? 오뉴월 하루 볕살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진정한 농사꾼이겠지요. 그 볕을 놓칠 새라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이 밭에서 저 논으로 신출귀몰하게 움직입니다. 참말이지 이럴 때는 어디선가 우렁각시가 나타나서 집안일이라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한두 달 전인가, 뜬금없이 남편더러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직접 밥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가사노동 분담의 원칙을 힘주어 말했던 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쉽사리 답변을 않더니 한 며칠 지나서야 일요일 하루만 식사를 담당하겠다 하더이다. 속으로 너무 좋았지만 겉으로까지 표를 너무 많이 내면 속보이니까 담담한 척하며 외식도 좋고 라면도 좋다고 하며, 일요일만큼은 식사를 준비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고만 했습니다.

사실 식사준비가 별것 아닌 듯해도 이것이 예사로 힘든 게 아닙니다. 시장도 없는 산골에서 텃밭과 냉장고에 의지해 때마다 식단을 준비해야 되고, 철을 가려야하고, 가족들의 영양을 고려해야 되며 그 와중에 집안형편 봐가며 준비해야 합니다. 실제 밥을 하는 시간은 매 끼에 한 시간 정도이면 족하지만 준비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꽤나 복잡합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반복되는 이 일이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지요. 즐겁기는커녕 몸과 마음이 무거울 때는 태산 같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농사일과 가사일을 나누자고 했던 것입니다. 첫 일요일은 남편이 시장도 보고 나름 꽤 정성스럽게 준비를 했는데 정작 그다음부터는 나도 잊어먹고 본인도 잊어버려 점심을 먹고 나서 기억이 난다거나 아예 통째로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어서 정말로 외식이나 라면으로 때울 때가 허다합니다. 그 조차도 지금처럼 바쁜 농번기에는 비효율적이기도 합니다. 물장화 신고 논일하다가 시간 맞춰 밥하려는 모양이 좀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여, ‘내가 할께’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데 꾹 참고 버팁니다. 이렇게라도 않으면 그 부담을 알 리가 만무할 것이고 바뀔 것이 없으니까요.

사실 이것을 남편과의 분담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지요. 사회적으로 함께 풀 문제입니다. 직장인들이 초 바쁜 시간에 밥 준비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일의 중요도나 성과측면에서 사 먹는 게 유리한 것이지요. 그러니 농번기만큼은 공동급식이 참으로 절박합니다. 일부지역에서 진행되는 것처럼 식재료비와 싼 임금을 주면서 동네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지 마세요. 지속하기 힘듭니다. 농번기는 누구나 바쁘고 무엇보다 동네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가 힘들어서 마을사람이 담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밥차를 이용해서라도 마을마다 공급하면 어떨까요? 이것이야말로 일자리 창출인 셈입니다. 농번기 공동급식을 전향적으로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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