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버스 차장③ 삥땅

  • 입력 2018.05.25 12:21
  • 수정 2018.05.25 12:2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운행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모두 잠에 떨어져 있었는데, 사감이 들이닥쳐서는 차장들을 모두 깨우더니, 옷을 전부 벗으라는 거예요. 브래지어까지 모두 다요. 언니들이 항의를 했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난 무서워서 덜덜 떨고만 있었지요. 그런데, 소지품 검사 결과 한 언니한테서 감춰뒀던 2만원이 나왔어요. 몸수색을 항의했던 다른 차장들이 할 말이 없어져버린 것이죠. 며칠 전부터 아버지 수술비 때문에 걱정을 달고 지내던 언니였는데…결국 쫓겨났지요.”

1970년대 말에 지방도시인 청주에서 버스차장으로 일했던 박봉자 씨의 얘기다.

버스회사 측의 차장들에 대한 알몸수색은 사회적으로 인권유린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서울의 어느 버스회사에서는 몸수색에 항의하여 차장들이 한밤중에 집단으로 뛰쳐나가 알몸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삥땅’을 한 것으로 지목 받아 개인적으로 수색을 당한 한 차장이, 기숙사 옥상에서 결백을 주장하며 투신자살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육칠십 년대에 서울에서 통근(학)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눈썰미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젊은 남자가 서류 판을 들고서 차장 바로 뒷좌석에 붙박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버스승객 계수원, 혹은 조사원이다. 차장의 삥땅을 감시하기 위해서, 어느 정류장에서 몇 사람이 승차했는지를 일일이 헤아려 기록하던 사람이다. 그가 기록한 승객 총수에다 1인당 운임을 곱한 금액이, 차장이 요금 정산소에 입금한 액수와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장과 조사원 사이에는 심심찮게 이런 승강이가 벌어지곤 했다.

“아까 우체국 앞 정류장에서 몇 명 탄 것으로 적었어요?”

“일곱 명 탔잖아요.”

“무슨 일곱 명씩이나 탔다고 그래요! 다섯 명인데.”

“분명히 일곱 명 탔다니까 그러네.” “내가 보니까 아까부터 계속 졸고 있던데, 분명하긴 뭐가 분명해요! 누구를 삥땅쟁이로 몰려고 그러나?”

“내가 언제 졸았다고 그래!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섰을 때는 안 졸았어.”

앞길 창창한 스무 살 안팎의 청년에게, 같은 또래 차장에 대한 감시 역할을 맡겨 버스의 고정된 자리에 말뚝처럼 앉혀놓았으니…젊은이들 간에 불신을 조장한다는 지적은 둘째 치고라도, 국가적으로도 인력 낭비였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차장과 조사원이 담합하여 회사를 속이는 경우에 대비해서, 길거리의 버스 정류장에 의자를 놓고 앉아, 승차하는 승객의 수를 기록하는 사람을 따로 두기도 했다. 버스 운송업자들의 차장에 대한 불신이 이같이 이중삼중의 흉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면, 청주 시내버스 차장이었던 우리의 박봉자도 삥땅을 한 적이 있을까?

“부끄럽지만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초년시절에…딱 한 번 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삥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까?

오후 5시, 신참 박봉자가 새로 배차 받은 버스에 올라타려는데 까마득한 고참 선배인 조춘희가 다가와 귀에 대고 가만히 말했다.

“내가 어제 5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를 탔었거든. 너, 이번에 너무 많이 하지 마라, 응?”

“그걸 어떻게 내 맘대로…. 어제 얼마 했는데요?” “5만8천4백 원 했어. 그러니까 알아서 해.”

요금을 너무 정직하게 정산해서 고스란히 입금하는 경우, 그 전날 같은 시각에 버스를 탔다가 삥땅을 했던 고참 차장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평소엔 한산하던 정류장에서, 어느 날엔 뜻하지 않게 많은 승객이 탑승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쨌든 그 날 박봉자는 순전히 선배를 곤란한 처지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돌돌 말아서는 화장실 구석 벽면의 홈에다 ‘짱박아’ 두었다. ‘딱 한 번’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