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농경사회 사람들] 금산어른 큰아들 ②

  • 입력 2018.05.20 00:05
  • 수정 2018.05.20 19:42
  • 기자명 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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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눈으로 직접 본 홍웅흠 씨는 놀라운 힘과 뜻밖의 행동으로 인해 때로는 기시감이 들 정도였다.(그것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려면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한정된 이 지면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열두 살 무렵부터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서 곧잘 나무를 해다 날랐는데, 가까운 곳은 민둥산이라 제법 먼 높은 산으로 가야만 엄지손가락 굵기 이상의 잡목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얼음이 꽝꽝 얼어붙은 저수지를 가로지른 북쪽 다락골 꼭대기 하늘산까지 가야했다. 거기 당도하면 먼저 칡넝쿨을 잘라 땅바닥에 놓고 잡목들을 베어 포갠 뒤 그 위에 걸터앉아 칡넝쿨로 묶으면 나뭇단이 완성된다. 그게 물거리 한 단이었다. 어른들은 항상 나무 한 짐을 물거리 석 단으로 완성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뭇단이 납작해야지 둥근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을에서 동네 형들과 함께 출발해 하늘산 꼭대기에 도착한 우리는 저마다 아버지 머리맡에서 훔쳐낸 담배(사각 성냥 한 귀퉁이를 찢어낸 것과 성냥개비를 시멘트 포대기 종이에 말아서)를 빠금거리며 노닥거리다가 나무를 하고 있노라면 홍웅흠 씨는 나타나곤 했다. 그는 이미 물거리 한 짐을 해다 놓고 다시 온 것이다. 그의 나무하는 낫질 솜씨야말로 가히 일품이었다. 그는 비탈에 빼곡하게 들어찬 잡목 앞에 두 무릎을 꿇은 뒤 왼손으로 나무들을 휘잡아 오른손으로 조선낫을 끌어당긴다. 베어진 나무는 홍웅흠 씨 무릎 위에 포개면서 금방 한 아름이 된다. 풀을 깎듯, 벼를 베듯 힘들이지 않고 또 한 아름을 포개면 물거리 한 단이 뚝딱 만들어진다. 동네 형들이 나무 밑동을 베느라 끙끙거리고 있을 때, 홍웅흠 씨 목소리가 산을 쩌렁 흔들어놓는다. 이 사람들아, 밥 먹으러 안 가나. 여기 좀 남은 게 있으니 갖고 가서 보태라. 돌아보면 물거리 한 아름이 버려져 있는 거기, 홍웅흠 씨 지게 위에 쌓아놓은 나뭇단은 마을 여느 어른들과는 달리 넉 단이었다.

출발하기는 동네 형들과 함께였으나 나는 자주 홍웅흠 씨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아직 서툴러 나뭇단이 베개처럼 작고 둥글었으며 겨우 두 단으로 한 짐이었다. 그것으로도 내 다리는 후들거렸고 걸핏하면 지게를 내동댕이치기가 일쑤였다. 그때마다 홍웅흠 씨는 내게 지게 지는 요령을 가르쳐주었는데, 내리막길에서 지게작대기로 중심을 잡는 법이며 쉴 때마다 지게를 부릴 때에는 발이 닿는 곳보다 제법 높은 자리여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마을 어른들이 늦은 아침을 먹은 뒤 한 짐, 점심 숟갈을 놓기 바쁘게 또 한 짐 겨우 해다 놓은 뒤 구판장에 나가 술추렴으로 해동갑을 할 때, 홍웅흠 씨는 하루 네 짐의 물거리를 해놓고도 망태를 걸머지고 산으로 들어가 삽주 뿌리를 캐다 나르곤 했다.

홍웅흠 씨는 뱀을 잘 잡았다. 들판에서 일을 하다 독사든 살모사든 화사든 가리지 않고 잡는다. 뱀만 만나면 대뜸 꼬리를 발로 밟는다. 이때, 뱀이 발딱 대가리를 쳐드는데 냅다 손으로 목을 잡아버린다. 그리고는 목에서부터 껍질을 벗겨낸 뒤, 목과 꼬리는 툭 잘라 던져버리고 도랑물에 넣어 대충 한번 흔든 뒤에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껍질이 벗겨진 뱀 몸뚱이가 홍웅흠 씨 손가락을 칭칭 휘감고 있는 광경을 한번 상상해보라. 물고 보러 가던 동네 아낙네들은 그 모습에 식겁을 해서 오던 길로 줄행랑을 치고, 나는 이맛살을 잔뜩 구긴 채로 입을 헤벌리고 쳐다보곤 했다.

여덟 남매에 어린 동생 셋까지 떠맡아야 했던 홍웅흠 씨. 동네사람들이 인민군이라고 불렀던 사람. 집에서 담은 밀주에 인이 박혔던 옛날 농사꾼. 앞산 하나쯤이야 가뿐하게 뽑아 저쪽으로 옮겨놓을 것 같았던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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