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마늘 수급대책에 관한 세 가지 쟁점

농경연 수급관측 참담한 실패
턱없이 부족한 수매비축 계획
생산자 배제된 수급안정 대책

  • 입력 2018.05.19 23:01
  • 수정 2018.05.19 23:0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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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양파·마늘 본격 수확철을 앞두고 사상 최악의 수급불안이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의 수급대책은 농민들을 안심시키기는커녕 부아만 잔뜩 돋우고 있는 모양새다. 농식품부 수급대책에서 농민들이 납득하기 힘들어하는 부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수급관측 참담한 실패, 왜?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은 올해산 양파·마늘 초과생산량을 각각 15만5,000톤·1만3,800톤으로 관측했었다. 그러나 정부 공식 집계인 통계청 발표 초과생산량은 각각 31만1,000톤·4만2,000톤이다. 무려 두 배가 넘는 오차. 배율이 아닌 물량으로 따져도 엄청난 차이다.

오차의 빌미가 된 건 통계청과 농경연의 조사 방법 차이다. 통계청은 주산지·비주산지 구분 없이 전국 각지 2만2,000개 표본구에 대해 실측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전체 재배면적을 예측한다. 충분한 표본수 확보를 통해 조사신뢰도를 담보하는 방법이다.

반면 농경연은 900개의 표본구를 대상으로 농가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한다. 표본수가 부족한 대신 표본을 품목별 주산지 위주로 배정하고, 조사결과에 다시 지역별 재배면적 가중치를 적용하는 등 디테일을 살린다.

적어도 품목별 전국 재배면적을 가늠하는 데 있어선 어느 한 쪽의 방법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 장담하기는 힘들다. 종자 판매 실적을 재배면적이나 생산량 관측에 적용할 수 있다면 관측정확도가 크게 올라가겠지만, 종자기업의 영업기밀과 엮인 문제라 이 또한 쉽지 않다.

비록 조사 방법이 다르다곤 하나 올해 이례적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지자 정부 관계자들도 몹시 난처해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또한 지난 15일 농민들의 항의서신을 받고 문제를 인정하며 향후 단일한 조사체계 구축을 시도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전했다.
 

지난 15일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마늘·양파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세종대로를 걸어 광화문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지난 15일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마늘·양파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세종대로를 걸어 광화문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수매비축, 이게 최선인가?

일단 정부 수급대책의 기준이 되는 공식 집계는 통계청의 조사결과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확실한 시장격리 물량은 양파 5만6,000톤, 마늘 6,000톤에 불과하다. 이는 농경연 관측치를 기준으로 해도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정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걸까?

시장격리 물량 가운데 양파 3만6,000톤, 마늘 4,000톤은 채소가격안정제(생산안정제)를 활용한 사전면적조절 물량이다. 여기엔 양파·마늘 사전면적조절 예산 43억원을 남김없이 사용했으며 지자체·농협·농가 출연기금이 함께 투입된다.

문제는 양파 2만톤, 마늘 2,000톤의 정부 수매비축 물량이다. 농식품부의 비축지원사업 예산 5,643억원 중 양파·마늘에 임의배정된 액수는 각각 223억원·465억원이다. 이 중 TRQ 비축예산을 제외한 국산 수매비축 예산이 각각 120억원·254억원이다.

정부 수매단가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양파 400원/kg, 마늘 3,000원/kg으로 수매단가를 가정해 계산해 봐도 현재 정부 수매비축 계획에 소요되는 예산은 각각 80억원·60억원에 그친다. 수매비축 물량을 늘릴 수 있는 정적 여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황이 심각할 경우 양파·마늘 예산 자체를 다른 품목에서 추가로 끌어오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농식품부 측은 수매비축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적정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대책이 그만큼 들어가고 농가가 역할을 해 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과도한 수매로 정부가 재고를 갖고 있게 되면 다음해 가격형성에도 불리한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했다.


농민 의견 빠진 수급대책

초과물량 대비 제한적인 수급대책에 농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분개하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 농민들이 참여했다면 최소한 치열한 토론이라도 이뤄질 수 있었겠지만 대책은 매우 순조롭게 결정·발표됐다.

정부 수급대책은 생산자·소비자·학계·유통인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가 의결한다. 품목별 생산자가 포함돼 있다고는 하지만 지역농협 조합장들로 구성된 농협 전국 품목조직의 대표들이다. 농협이 농민들의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수급대책 결정에 농민들의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 없는 셈이다.

이는 최근들어 농민들이 한층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부분이다. 지난달 대파농가 상경집회도, 이번 양파·마늘농가 집회도 수급대책 촉구와 함께 전국단위 품목 농민조직 발족을 전면에 내걸었다.

품목을 대표하는 전국 농민조직이라면 기존의 농민단체들보다 좀더 전문적인 입장에서 수급대책 등의 논의에 관여할 수 있다. 농민들의 조직화 성패 여부와 정부의 수용 의지에 따라 의사결정 과정상의 맹점은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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