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렇게 잘 알면서

  • 입력 2018.05.18 11:0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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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정부의 수급대책에 대한 불신이 큰 원인이다’, ‘농가 자율조절 물량을 산지폐기 혹은 비축수매 물량으로 돌려 흡수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추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수입상 좋은 일만 하는 꼴이 되선 안 된다’.

전남의 양파 재배 농민들과 경남의 마늘 재배 농민들은 지난 15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 소공원에서 연합으로 집회를 열었다. 통계청의 재배면적 조사결과 발표 이후 올해 엄청난 수치의 공급과잉이 예상되면서, 가격 폭락을 이대로 눈 뜨고 못 보겠다는 절박함에 1,000여명이나 되는 농민들이 바쁜 농번기에 서울을 찾았다.

글머리에 적어 놓은 저 문장들은 농민들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며 한 관료 출신 정치인이 주장하는 바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옮겨 적은 것이다. 이 말을 관료 출신이 했다니, 농민들은 쉽게 믿을 수 있을까?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영록 더불어민주당 전남도지사 후보다. 대회 하루 전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가 뿌려졌다.

‘양파값 폭락이 충분히 예고 됐음에도 올 초 수입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2,000여 톤 줄어드는 데 그쳤다’고 지적하는 데선 정책 실종의 책임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는 듯 한 모습까지 보인다. 그렇게 잘 알면서 그동안 왜 수입은 멈추지 않았고, 왜 농민들이 원하는 농정개혁을 향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역대급의 농정공백에 일조했는가.

마치 사태에 대한 본인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처럼 쓴 이 자료를 보고 허탈한 웃음만이 나왔다. 정부를 지적 할 수 있을 만큼 두달 전까지 그가 이끌었던 농식품부가 달라진 면모를 보여줬다고 느끼는 농민은 아무도 없다. 농민을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이슈를 타고 표심을 얻어 보려는 갈망만이 짙게 느껴질 뿐이었다.

정작 양파 농민들이 힘들다고 상경까지 한 자리엔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전남도민과 농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안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이날 군중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어쨌든 당선은 되겠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표를 몰아주지는 말아야한다고.

대통령을 향한 압도적 지지를 함께 누리고 있는 현 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이 점쳐지고 있다. 김 후보도 외부 요인에 의한 이변만 없다면 당선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보여줘야만 한다. 맡은 바 책임을 나 몰라라 한 정치인에게 온전한 환대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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