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버스 차장② 수습 차장 박봉숙의 운행 일기
[그 시절 우리는] 버스 차장② 수습 차장 박봉숙의 운행 일기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8.05.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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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78년, 충청도 괴산 출신의 열일곱 살 박봉숙이 청주의 한 시내버스 회사에 차장(안내양)으로 취직을 했다. 옷가방을 품에 안고 주춤주춤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다음 날 아침부터 그녀의 차장 수습(修習)을 지도할 선참 차장이 이렇게 말하더란다.

“앞으로 차장 노릇 잘 하려면, 반드시 외우고 씩씩하게 실천해야 할 규칙이 있다.”

박봉숙은 당연히 무슨 근무규정이나 아니면 버스 노선의 정류장 이름을 외워야 한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날 저녁에 선참 차장 조춘희와 수습 차장 박봉숙이, 기숙사 천장이 쩡쩡 울리도록 선창과 복창으로 외쳤던 구호는 이런 것이었다.

“잠이 보약이다!” - “잠이 보약이다!”

“틈만 나면 잔다!” - “틈만 나면 잔다!”

명심해야 할 실천사항이라는 게 고작 그것이었다. 버스 차장은 수면시간이 태부족하므로 시간과 조건을 따질 겨를 없이 짬만 나면 자야한다는 것이었다. 서서도 자고, 앉아서도 자고, 기대서도 자고…용변을 보면서도 자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새벽부터 박봉숙의 차장 수습이 시작되었다. 시내버스라고는 하지만 청주는 시가지가 좁기 때문에, 차고가 있는 봉명동을 출발한 버스는 시내 정류장을 몇 군데 경유한 다음에, 멀리 괴산군의 증평까지 갔다 오도록 노선이 짜여 있었다. 말이 시내버스지 시외버스나 한가지였다. 또한 서울 등의 대도시 시내버스와는 달리 요금이 균일하지도 않았다. 박봉숙이 탔던 대한운수 버스는 청주 시내를 벗어나면 시내 요금에 50원도 추가하고 100원도 가산하는 등 간단치 않은 요금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오창면 사무소 내리실 분 나오세요. 안 계세요? 오라이!” “아저씨 50원 더 주셔야지요. 시장입굽니다, 스톱!” “에잇, 아저씨는 학교 앞에서 타셨잖아요, 30원 더 내셔야지요.” “안에 자리 비었어요, 안 내릴 거면 안으로 들어가세 스톱, 스톱!” “아주머니, 산 닭을 자루에 넣지도 않고 그냥 날갯죽지만 잡고 타면 어떡해요!”….

박봉숙은 선참인 조춘희가 거침없고도 노련하게 승객을 통제하는 모습을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출입구 옆에 요금표가 부착돼 있었지만, 조춘희는 그걸 들여다보지 않고도 시외 지역의 구간별 요금을 훤히 꿰고 있었다. 차장 노릇,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보였다.

드디어 버스가 차고지와는 반대편 종점인 증평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는 출발 시각이 별도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버스가 차고에 도착하면 차장은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 운전석 옆의 보닛(엔진 덮개)에다 돈을 쏟아놓고 정산을 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의 버스가 옛날과 달라진 것 중에는 차장이 없어졌다는 것 말고도, 운전석 오른편 옆자리에 볼록 솟아 있던 그 보닛이 아래쪽으로 숨어 들어갔다는 점도 있다. 예전에는 버스 안에서 보닛의 뚜껑을 열고 엔진오일을 부어 넣기도 했었다.

“동전까지 다 헤아렸지? 내가 센 돈은 41,600원인데 봉숙이 너는?”

“18,400원. 그럼 언니가 센 거랑 합치면…아, 딱 6만원이네!”

“에이, 왜 하필이면 똑 떨어진 6만원이야. 자, 그럼…5천원은 빼고….”

조춘희는 5천원을 빼내서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대신 백 원짜리와 십 원짜리 동전 몇 개를 꺼내 요금에 보태서 그 액수를 정산서에 기재했다.

“언니, 6만원인데 왜 5만5천2백70원만 적어요?”

영문 몰라 하는 박봉숙을 향해 조춘희가 나직하고 은밀하게 말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

이상했다. 박봉숙이 중학 때 배운 저차방정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묘한 셈법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밤 운행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기숙사 사감이 들이닥쳤다.

“전원 기상! 일어나서 탈의한다! 싹 다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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