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대파 농가들이 상경투쟁을 벌인 지 불과 한 달만에 양파·마늘 농가들이 똑같은 자리에 섰다. 겨울대파에 이어 햇양파·햇마늘까지 줄줄이 가격 폭락 위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농업에 대한 대통령의 무관심을 규탄하며 성의 있는 대책을 촉구했다.
통계청 재배면적 조사 결과 올해 양파·마늘 예상 초과생산량은 당초 농식품부가 예측했던 양의 2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파는 역대 최대, 마늘은 2013년 이래 최대 재배면적이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대책으로 내 놓은 수매비축 및 사전면적조절 물량은 초과량의 10%대에 불과하다. 터무니없는 수급관측 실패에 대해서도, 부실한 수급대책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이번 집회엔 전남·경남의 양파·마늘 재배농민 1,000여명이 참가했다. 마늘과 양파는 시군단위 조직은 어느 정도 갖춘 반면 전국조직이 미비한 실정으로, 이날 집회에서 전국조직 결성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강력한 조직화를 통해 향후 정부 수급정책에 농민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포부다. 집회는 이들 준비위원회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고송자 양파 전국생산자협회 준비위원장은 “유통상인들이 작년에 양파를 사서 저장해 놨는데, 가격이 조금만 오를라 치면 수입물량이 물밀 듯이 들어오니 팔 수가 없었다. 지금 그동안 못 팔았던 재고물량과 수입물량, 정부 물량을 모두 시장에 풀고 있으니 햇양파를 팔 길이 없다”라며 정부 수급정책을 비판했다.
농민들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농업 홀대 기조를 입 모아 지적했다.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남북이 통일을 얘기하는 시기에 농민들은 열외국민 취급을 받고 있다. 통일농업을 말하면서 (쌀)대체작목을 얘기하고,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이 정부에 과연 농업철학이 있나”라고 물었고, 성연준 마늘 전국생산자협회 준비위원장도 “정권이 바뀌고 기대가 컸지만 지난 1년의 농업정책은 실망스럽다. 무능한 장·차관과 관료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농업을 챙겨 달라”고 호소했다.
박행덕 전농 의장은 “대통령의 무관심이 제일 큰 농업적폐”라며 “농민운동이 없으면 우리 삶은 바뀌지 않는다. 과거 김대중 정권이 섰어도 한칠레 FTA 반대투쟁을 해야 했고, 노무현 정권이 섰어도 한미 FTA 반대투쟁을 해야 했다”며 농민들의 연대·투쟁을 격려했다.
세종로 공원에서 본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광화문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지나 청와대 앞까지 행진한 뒤 청와대에 서신을 전달했다. 서신엔 △수급관측 실패 사과 및 대책 수립 △양파 5만톤, 마늘 2만톤 수매비축 △수입농산물 검역체계 강화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실시 △생산자대표와 공공수급제 연구계획팀 구성 △대통령의 농업분야 각성 등 6가지 요구사항을 담았다. 농민 대표들은 이후 양파·마늘 전국조직 결성을 위한 향후 회동 일정을 잡고 집회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