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사업 앞세운 토지수용, 설 곳 잃는 농민

[ 기획 ] 농지강제수용열전①
공시지가 근거로 턱없이 낮은 보상 … 생존권 침해
오랜 세월 농지 가꾼 가치·노고 전혀 반영 안 돼

  • 입력 2018.05.13 11:25
  • 수정 2018.05.18 10:4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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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이기인 할머니가 수용이 예정된 철원 노동당사 앞 자신의 논을 가리키고 있다.
이기인 할머니가 수용이 예정된 철원 노동당사 앞 자신의 논을 가리키고 있다.

 

토지보상법의 선을 넘는 강제성과 미흡한 보상규정이 각지에서 해마다 분쟁과 반발을 낳고 있다. 농촌과 농민이 보기엔 농지를 빼앗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다양한 피해 사례를 통해 현 토지보상법의 문제점을 들춰보고, 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좋을지 그 방향을 탐구해 본다. 한우준 기자

 

①공익사업 앞세운 토지수용, 설 곳 잃는 농민

한 할머니 이야기

지금은 민간통제구역이 된 경기도 연천군 북부 출신 이기인 할머니(85,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는 평생 접경지역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작고한 남편은 40대 나이에 교통사고로 일찍이 경제력을 상실했다. 어렵게 삼남매를 키우면서도 타지의 공사판에 나가며 열심히 모은 돈으로 그는 민통선 안에 작게나마 자신의 농지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남은 이 농지의 상당부분을 내년이면 내줘야할 처지에 놓였다. 철원군이 안보 견학지로 유명한 철원 노동당사 앞을 근대문화체험 테마공원으로 조성한다며 인근 부지의 수용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실 할머니는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지난 1981년 국방부가 군사이용 목적으로 밭 800여 평을 수용했고, 2000년대 들어 민통선이 노동당사 옆으로 북상하자 둔덕을 만드는 과정에서 450평가량을 더 잃었다.

이것만도 억울한데, 노동당사 앞에 남은 논 1,700여 평마저 통째로 수용 절차에 들어가면서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그 동안 가져간 땅도 하필 좋은 곳만 가져가더니, 수십년 동안 어렵게 가꾼 땅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빼앗으려고 하냐”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의 딸 유경림(52)씨는 “노동당사의 역사적 가치는 이해하지만 현재 충분히 보호되고 있고, 지금도 주변에 넓은 공터가 있는데다 방문객이 많지도 않다”며 “근대문화거리 재현이 군의 일이라는 이유로 생업인 농토를 아무 저항도 못하고 빼앗기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의하면 수용 대상으로 지정될 경우 개인이 이를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시지가가 기준, 턱없이 적은 보상

그래도 수용 절차에 의거, 지주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있는데 순전히 ‘빼앗는다’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할머니가 땅을 넘기는 대가로 받는 보상액수를 확인하면 유씨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1차 감정평가에서 평가사들이 할머니의 땅에 매긴 가치는 평당 9만원 수준. 2차 감정평가에선 14만원까지 오르긴 했지만 20만원에서 30만원에 이르는 현재 주변 거래 시세에 비하면 턱 없이 못 미친다. 땅을 다시 구입한다 해도 부족한 보상 금액으로 인해 줄어들 영농규모를 생각하면 할머니는 분통이 터진다.

물론 적절한 보상이 이뤄진대도 할머니는 땅을 넘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민통선이 올라가면 이 논 옆 공터에 집을 짓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을 대접하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종종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해 온 할머니였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청와대 앞에 가 ‘네번의 강제수용을 당했다’는 피켓을 들며 1인 시위도 하고, 부족한 글솜씨로 장문의 자필 탄원서도 넣었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토지보상법에 의하면 국가가 토지를 취득할 때 그 보상액은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대개 공시지가는 부동산 시장의 시세보다 턱 없이 낮기 때문에 각종 공익사업이 시행될 때마다 보상수용 대상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자신의 재산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이기인 할머니의 '농민은 농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자필 탄원서.
이기인 할머니의 '농민은 농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자필 탄원서.
청와대 앞 1인 시위 모습. 토지강제수용철폐 전국대책위 제공
청와대 앞 1인 시위 모습. 토지강제수용철폐 전국대책위 제공

 

빼앗는 자를 위한 토지보상법

물론 법률에는 지가변동률, 생산자물가상승률, 기타 조건 등을 고려해 보상하라고 명시돼 있지만 ‘적정한 가격’으로만 표현할 뿐 그 어떤 보호 장치도 마련하지 않아 국가가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 또 시행하려는 사업이 법률에서 정한 공익사업의 범주에만 들어가면 그 공익성을 검증해야할 의무도 없다. 위 사례처럼 ‘그 공원이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지’ 의구심이 들더라도 제동을 걸 수 없는 구조다.

특히 농지의 경우엔 표준지공시지가부터가 낮고 면적 당 이해관계자가 다른 필지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라 공익사업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또 오랫동안 농지를 소유하며 농업의 보존에 힘쓴 가치와 노고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그저 2년분의 기대소득을 기준으로 영농손실 보상이 주어지는데, 보상액이 시가에 한참 못 미치다보니 대개는 같은 규모의 농지를 새로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지난 2000년 약 189만ha였던 농지면적은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인한 농지전용이 이어지며 매해 만 단위씩 감소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160만ha선이 붕괴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현희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남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주택·산업단지·공공시설 등을 세운다며 모은 땅 중 약 400만㎡를 지난 7년간 재매각했다. 결국엔 사용하지 않을 땅을 사들이느라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더욱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점은 그 매각 가격이 수용절차를 통해 사들인 가격보다 훨씬 높아 LH가 2.5배의 이익을 남겼다는 데 있다.

그 기간 LH의 토지매각 규모는 5조5,400여 억 원에 이르는데, 이를 전국 공인중개사 등을 통해 민간에 팔았다. 일반적으로 LH소유 토지를 민간에 매각할 때는 토지청약시스템을 통해 경쟁입찰로 낙찰자를 선정하지만, LH는 이들 토지가 장기간 매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인중개사 등 개인에게 알선을 맡겨 땅을 판 것이다. 현재의 토지보상수용제도가 국민의 재산을 편취하기 쉬운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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