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49] 5월의 과수원

  • 입력 2018.05.13 01:28
  • 수정 2018.05.14 11:25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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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5월의 과수원 풍경은 아름답다. 녹색의 향연이다. 200여 그루의 알프스 오토메 사과나무도 그렇고 이랑 사이의 호밀도 그렇다. 싱싱하고 풋풋하다.

그동안 많은 영농기술교육을 받으면서 강사들이 강조했던 것 중에 하나가 호밀을 이용, 유기물 함량을 높여 땅심을 끌어 올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지난해에 이어 지난해에도 11월경에 호밀을 이랑에 뿌려주고 잘 덮어 주었다. 봄이 되자 겨울동안 흐지부지하던 새순들이 풀들보다 먼저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5월이 되자 60~80cm까지 크게 자란 호밀들이 여기저기서 이삭을 출수하기 시작했다. 이때쯤 베어주라는 강사들의 가르침에 호밀을 일제히 베어 이랑에 깔아 주었다. 예초기로 싹싹 깎듯이 베지 않고 특별 제작한 자루가 긴 낫으로 툭툭 쳐주었다. 면적이 작기도 하지만 기계는 무조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풀보다는 베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베어낸 호밀의 생초량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평당 약 10kg정도 된다고만 보아도 약 4톤의 생초가 과수원에 환원되었으니 땅과 벌레와 미생물들은 물론 누구보다 알프스 오토메가 장기적으로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암튼 5월의 과수원은 초록과 연초록이 뒤덮인 공생의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평화의 동산임에 틀림없다. 3년차에 접어든 알프스 오토메는 지난해 보다 훨씬 많은 꽃을 피웠다. 5월이 되자 꽃은 모두 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리쌀만 하던 열매들 중에 한 송이에 5~6개의 과일이 맺히는데 5월 현재 한 송이에서 2~3개의 과실만 남기고 꼭지가 빨간색으로 변하더니 2~3개는 커지지 못하고 떨어졌다. 소위 낙과현상이 나타났다. 미처 수정이 안 됐거나 한 꼭지에 5개의 과실은 도저히 못 키우겠다고 판단한 나무가 스스로 개수를 줄이는 것인지, 아니면 영양이나 미량원소가 부족해 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핀지 한 달 정도 후에 나타나는 낙과현상은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하니 이를 믿고 싶다. 나무 상태가 아직은 좋아 보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을 수확기 수익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농부로서는 마냥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과연 얼마나 결실하게 될지, 수확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판매할만한 모습이 될지, 가격은 또 얼마나 될지, 잘 팔 수는 있는 것인지 등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수확기까지 방제는 언제 얼마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영양은 어떤 것으로 언제 얼마만큼 해야 할지, 하계전지 전정 작업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기술적인 과제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결국 금년 5월의 과수원은 평화와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내년 5월의 과수원은 어떤 생각이 들게 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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