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책임’이 싫은 그대에게

  • 입력 2018.05.13 01:23
  • 수정 2018.05.14 11:25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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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을 비판해야할 땐 좀 그래요. 그도 누군가의 부모일 텐데 우리 엄마, 아빠 생각도 나고….” 몇 주 전 후배가 말했다. 나는 아직 선배라 불리기 어줍짢은 ‘끄트머리 기자’가 맞다. 어떻게 대화를 끌어가야 좋았을지 이제야 생각났으니까.

농업 분야에서 기자가 가장 많이 ‘까야하는’ 존재는 단연 공무원이 되고 만다. ‘공무원’이라면 취재 현장에서 하도 욕만 듣다보니 원래 그러려니 하다가도 문득 연민의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 연민이 “저 사람 욕만 먹어서 불쌍해”가 아니라 “어쩌다 저런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을꼬”하는 종류의 것이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간담회건 토론회건 농업과 관련한 정책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직접 본 공무원들은 영혼 없이 늘 공개해왔던 자료집을 낭독하거나, 내 담당이 아니라서 혹은 보직이 변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용을 잘 모르거나, 본인에게 결정 권한이 없어서 논의해야하거나 중에 하나를 선택해 그 날의 컨셉을 정했던 것 같다. 공무원만의 처세술로 봐야할까. 농정개혁위원회가 현장에 가서 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던 때도 그랬고, 미허가축사 적법화 방안을 논의할 때도, 지난 4일 본지 토론회에서도 그랬다.

저런 말들을 전달해야하는 기자도 헛웃음이 나는데, 직접당사자인 농민들은 얼마나 복장이 터질까. 농업적폐 청산을 위해서는 ‘농정관료’부터 개혁해야한다는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가 왜 그리 거칠었는지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

농촌을 본인이 사는 곳처럼, 논·밭을 본인의 일터처럼 걱정하고 챙기는 것까지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농업이 무너지고 농촌이 사라지면 본인들이 앉아있는 그 자리는 필요가 없어진다는 위기감만이라도 가지기를 바라본다. 그러면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아니라면 과감히 때려치우기를 권하고 싶다.

공무원이 ‘제 담당이 아니라서 모른다’, ‘관계부처와 협의해보겠다’라는 무책임한 말들로 책상을 지키고 앉아있을 때, 한 가정을 책임지고 농촌을 책임지고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농민들은 생계를 강제로 포기당하고 있는 현실.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보게 될 것 같은데 벌써부터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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