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모종은 사랑이다

  • 입력 2018.05.11 13:17
  • 수정 2018.05.13 21:01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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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이삼일이 멀다하고 비가 내린다. 다행히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고 촉촉이 내리는 비라서 마음은 놓이지만 일이 자꾸 늦어져서 큰일이다. 비 오기 전날 심어 놓은 모종들이 잘 살아 붙었는지 궁금하여 아직 빗물이 채 빠지지 않는 밭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멀리 부여에서 씨를 가지고 와서 모종 낸 토종고추, 동네 아지매한테 얻은 토종가지, 동네분이 심고 남았다고 주신 아삭이고추, 그리고 멀리 스페인 여성농민에게서 받아 온 스페인토종토마토까지. 하나하나에 그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지고 사연이 생각나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본다.

귀농후배한테 작년에 씨 받아서 모종 낸 토마토와 파가 있다고 하니 그것도 갖다 심으려고 하고 이제 막 씨를 얻어서 부어놓은 사과참외, 흑수박까지 심으면 부자가 부럽지 않을 텃밭이 될 것 같다.

텃밭에 심을 모종은 대부분 집집마다 자기가 받아 놓은 씨로 필요한 만큼 내지만 조금 넉넉하게 하게 된다. 키우는데 실패할 수도 있고, 심을 땅이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지 않으니 여유 있게 붓기도 하고, 이웃에게 나눠 줄 생각까지 하며 넉넉하게 씨를 뿌린다. 나 같이 게으른 농사꾼은 모종을 얻어다 심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올해는 한 가지는 이웃에게 나눠 줄 수 있었다.

작년 스페인에 갔을 때 토종을 지키는 여성농민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여러 가지 토종씨앗과 토종농산물을 보여 주었는데 특히 색도 다양하고 맛도 다양한 토종토마토에 내가 관심 있어 하니 씨앗을 조금 챙겨 주었다. 반신반의하며 그것으로 모종을 냈는데 다행히 잘 났다.

집에 심고도 남아 이웃 어머님들께 나눠 드렸더니 색다른 모종이라 모두 좋아하셨다. 올 가을에 씨를 받아 주겠다는 분도 계셨다. 다리가 아파서 바깥출입은 못 하시고 겨우 마당 한쪽 귀퉁이에 텃밭을 가꾸고 계시는 할머니에게도 이 모종을 드렸더니 좋아하셨다. 이렇듯 모종은 내가 얻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는 이웃 간의 정이고 사랑이다.

텃밭에 심는 모종은 물론이고 넓은 밭에 심는 모종도 지금까지 이웃들의 도움으로 해결해 왔다. 작년에는 고추 1,000포기, 단호박 700포기, 양파씨 1통을 모종으로 키워서 심었다. 단호박 모종은 우리 집에서 키웠지만 고추와 양파는 이웃이 키워 주었다. 고추 모종은 설 쇠고 아직 추위가 안 풀렸을 때 바로 시작해야 해서 난방장치가 제대로 안 되는 허술한 하우스에서는 키우기가 어렵다.

그리고 모종을 내 놓으면 매일매일 물을 주고 돌봐야 하기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많이 심지 않는 집에서는 이웃에게 부탁해 키운다. 때로는 그 이웃이 모종에 물을 못 줄 때는 대신 주기도 하고, 바빠서 하우스 문을 못 닫을 때면 대신 닫아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일이 불법이란다. 여태껏 이웃끼리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농사지어왔는데 등록업자가 아니면 사지도 팔지도 말라고 하니 참 기가 막힌다. 누가 정부에게 이런 규제를 요청했을까?

그 이유로 불량모종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모종을 키우고 거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은 뻔하다. 나는 누가 키운 것인지도 모르는 모종보다는 내가 아는 이웃이 키운 모종을 더 신뢰한다.

씨앗이름이 선명하게 적혀있는 모종이라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종보다는 이름이 헷갈려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이웃이 키운 모종을 더 신뢰한다. ‘모종’ 그 생명체에 고스란히 그 사람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농사꾼인 나는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종 키우는 권리조차 뺏어 가려는 세상이지만 땅 냄새를 맡은 모종이 새카맣게 살아 붙는 것을 보니 눈부신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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