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또 다시 금강산

“이야~” 밖에 할말 없던 풍광
놔두고 가려니 눈물 난다던 딸
놓고 온게 어찌 경치뿐이었으랴

  • 입력 2018.05.06 01:26
  • 수정 2018.05.18 11:37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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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10여년 전 겨울에 우리 식구들은 금강산으로 가는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북한은 더 추울 건데 얼어 죽을 일 있냐”는 아내와, 엄마 편에 서서 “아빠만 가” 하고 짜증내는 중학생과 6학년 두 딸에게 “이번에 같이 안가면 앞으론 나하고 어디 가자고 절대 하지 마”라고 큰소리를 친 건지 빈 건지 그렇게 금강산 나들이는 시작되었다. “다음에 따뜻한 날 가지 뭐” 했다면 지금까지 노래로만 부를 ‘그리운 금강산’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찾은 금강산은 “이야~”라고밖에 할 말이 없을 듯 숨 막히는 풍광을 보여준다. 물빛은 왜 그리 고운 건지, 햇빛이 없어도 바위들은 하얗게 빛을 내고 돌 하나 소나무 하나 봉우리까지 층층이 올라가며 눈을 잡아끈다. 남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기 전 몇 번이고 뒤돌아 선 자리에서도 아릿한 풍경들은 눈과 발을 묶어버린다. “놔두고 가려니 눈물이 난다.” 끝까지 가기 싫어했던 막내딸이 말을 꺼내고 계절마다 꼭 데려가 달라고 입을 모은다.

놓고 온 것이 어찌 경치뿐이었으랴.

허름한 집집 굴뚝마다 연기가 오르고 학교 유리창엔 난생 처음 마을로 들어온 관광버스가 신기한 듯 얼굴을 포개 가며 구경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참 어렵게 사는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네 농사꾼들 삶도 어쩌면 빚을 내서 먹고 사는 처지인데 내가 뭐 그리 그들보다 잘 사는 것도 아닌 듯하다.

밤늦게 눈이 내리고 그 눈은 꽁꽁 얼어 있었다. 험하다면 험한 산길, 그 길에 배낭을 멘 아가씨 두 명, 삽과 곡괭이를 든 청년 둘을 보게 된다. 바위틈에 모래를 찾아내서 새벽부터 흙자루를 담고 온 산길에 뿌리고 다녔을 것이다.

금강산에서 먹은 메밀빈대떡이 먹고 싶다. 고성항에서 난다는 뻘건 멍게 맛은 또 어찌할꼬.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여기 와서야 처음 먹어 보는데 어찌 한 접시만 먹을까!” 우리 자리엔 메밀빈대떡과 멍게가 다시 푸짐하게 놓여진다.

긴장감이 도는 출입국 관리소에서 같이 갔던 친구가 “미국놈을 몰아내고 우리끼리 힘 모아서 통일합시다” 인사를 건네자 무서운 얼굴을 하던 군인들 얼굴에 웃음이 번져 가는 것도 보았다. 너무 달라져 있다고, 가까워지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억지로 우기는 말이다. 그들의 것들을 좋게 보는 순간 떡도 얻어먹을 수 있고 마음도 나눌 수 있는 것이었다.

남북 정상이 만난 저녁, 제주에 왔던 철원 농부들 중에 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우리 동네에서 ‘4.3 항쟁’을 얘기하고 막걸리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른 사이다. “우린 내일 철원서 기분 좋게 막걸리 판 벌일 겁니다. 형님 놀러 오시죠” 한다.

그래, 강원도 철원은 어찌 사는지 무슨 아픔들이 있는지 가서 보고 금강산도 같이 갈 궁리 좀 해보자구. 제주에서 북에 보냈던 귤이며 당근이 겨울에 가서 보니 너무 귀한 거더라. 올해 쌀 좀 많이 준비해 두시게. 우리도 귤도 당근도 다시 모아서 먹거리라도 오고가다 보면 사람들도 오고가고 철책도 저절로 없어지는 거 아니겠나.

‘살아생전 금강산’이라는데 한 번 보고 온 나에게는 더 그리운 금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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