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곡우에 기대하는 또 다른 희망

  • 입력 2018.04.22 08:24
  • 수정 2018.05.13 21:04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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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에는 곡우 무렵이면 노지 작물들을 파종하거나 이식하는 적기입니다. 그러니 텃밭 작물이건 상업 작물이건 이 즈음 빈 논밭들이 곡식으로 채워집니다. 들녘이나 골짜기가 이른 아침부터 트랙터소리, 관리기 엔진소리로 요란합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다 같이 하는 농사이지만 농작물마다 관리주체가 조금 다릅니다. 논농사의 경우는 남성들이 하고 여성들은 주로 밭농사에 신경을 쓰는 편이 대부분이기는 하다만, 기계작업은 남성이 하고 사양관리는 여성이 하는 경우도 있지요. 또 어떤 집의 경우는 여성이 농사에 밝아서 남성은 시키는 일만 하는 집도 있고 반대로 남편이 시키는 일만 하는 여성도 있습지요. 어떤 식으로든지 각자 익숙하게 해오던 방식대로 농사일을 합니다.

실제 일을 하는 모양새는 어떠한 지 상관없이 농작물이 출하될 때는 남성 가구주의 이름으로 대부분 출하되지요. 혼자 사는 여성이 아닌 경우에도 농작물 출하통장을 가지는 예외의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 경매장에 아내의 이름으로 따로 분리해서 출하를 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남성이 있는데 여성의 이름이 주 출하자로 등록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는 말씀이지요.

돈만 통장에 꼬박꼬박 잘 들어오면 되지, 누구 통장으로 들어오는지 그까짓 것이 뭐가 중요해? 또는 논밭이 우리집 앞으로 돼 있으면 되지, 누구이름이면 뭐가 중요해? 그러게요. 이름보다 실질이,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긴 한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는 게 세상살이잖습니까? 통장거래 내역이 신용평가의 우선 기준이고,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의 출발이지요. 주종의 관계가 아닌 경우라면 재산을 공동명의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지요.

여성농민이 농가주부로 불리고 보조자의 지위로 인식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경제행위, 농업노동의 커다란 주체임에도 실질적인 금융활동이나 농업경영자로서의 지위는 가지지 못하는 것 말이지요. 이것이 여성농민을 생산의 주체에서 얼마나 소외시키는 것인지 모를 것입니다.

좀 배웠다는 분들, 좀 나다닌다는 분들도 아내의 재산 공동명기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을 냉정히 돌아볼 일이지요. 법이 강제하지 않고 오랜 문화가 그러하니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면밀히 살펴보면 부당한 것들 투성이니까요.

남북교류가 한창일 때, 평양근교의 협동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농업실적과 노동기여 현황을 마을 어귀 안내판에 걸어놓고 설명해주던 분이 50대 후반의 뱃살 두둑한 여성분이었지요. 으레 남성이 협동농장장일 것이라는 추측과 다르게 말이지요. 설명이 끝나고 사진 촬영하는 시간에 농장장분 곁에 가서 살짝 여쭸더니 협동농장장 90% 정도가 여성분이랍니다.

귀를 의심했고 지금도 다시 확인하고픈 사실입니다. 진짜 그런지, 왜 그런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북의 농업 전반을 평가할 것은 아니나 적어도 여성의 지위에 있어서 실사구시하는 것은 그 농장에서만큼은 사실이었으니까요.

작물을 심고 관리하는 그 모든 농사과정에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여성의 성정이 그대로 반영되기에 농업이 여성적이라고도 하기도 합니다. 그 시각으로 여성이 농업의 미래임을 확인한다면 곡우 무렵의 파종이 보다 희망적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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