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 무엇도 잃을 수 없다

  • 입력 2018.04.22 03:31
  • 수정 2018.05.18 11:46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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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3월 어느 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우렁이를 통한 유기농법이 시행됐다는 충북 음성군의 한 마을을 찾았다. 날씨는 화창했건만 그날의 대기엔 미세먼지가 가득 찼다. 그날의 날씨마냥 애써 밝은 모습을 보이려 했던 농민들의 가슴 속엔 울분이 가득 찼다. 농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 유기농지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줄기차게 산업단지 건설 반대투쟁을 했다. 과거에 우리 신문에서 썼던 기사들을 보니, 몇 년 동안 음성군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던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그 당시 투쟁에 앞장섰던 농민 중 한 분은 고인이 됐다. 그날 기자가 방문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우렁이농법 시행지가 그 농민의 손길이 묻어 있던 곳이었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최초의 우렁이농법 시행지도, 정성스레 유기농 쌀을 재배하던 공간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리라.

그 일을 앞서 겪은 곳이 있었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다. 이곳은 이명박 정권 시절 진행한 4대강 사업으로 기존 유기농지가 훼손됐다. 두물머리 농민들은 정권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유기농지 훼손을 막기 위해 싸웠다.

당시 정부 당국자란 작자들은 “유기농업이 팔당 상수원을 오염시킨다”는, 누가 들어도 기가 찰 논리로 4대강 사업을 강행했다. 오히려 오염된 물과 토양을 정화시키는 게 유기농업임을 그들도 모를 리가 없었음에도 거짓말을 했다. 결국 유기농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부는 농민들과 약속했던 생태학습장 조성 등 최소한의 약속마저도 여태껏 이행하지 않았다.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게 많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서며 골목 빵집과 구멍가게가, 재래시장이 사라진다. 일부 건설사 및 그와 유착된 권력의 이익을 위해 강바닥을 파며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기농지 중 하나가 사라졌다. 그건 유기농지 8만2,000평이 사라진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곳의 거대한 생태계가 사라졌음을, 마을공동체가 사라졌음을, 농민들이 쌓아온 정성이 사라졌음을 뜻한다. 음성에서도 최초의 우렁이농법 시행지가 사라지는 걸 넘어 그곳의 마을공동체와 생태계 그리고 농민들의 정성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유기농지는 단순히 유기농사를 짓는 곳이 아닌, 이 땅의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바꾸기 위한 근본적 방법과 기술, 그에 대한 고민이 집대성된 공간이다. 개발논리와 그에 결탁한 권력의 욕심으로 그 소중한 공간들을 더는 잃을 수 없다. 어디 유기농지 뿐이랴. 그 동안 농민들이 잃었던 거의 모든 것은 권력과 자본의 논리로 인한 것이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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