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 연속 인터뷰②] 박형백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사무처장

“농협에 희망이 있나?”

  • 입력 2018.04.13 15:43
  • 기자명 박경철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2016년 농협법 개정안 통과로 지난해 초 농협의 지주체제 전환이 완료됐다. 이후 새정부 출범과 맞물려 농민·사회단체도 농협 적폐 청산을 요구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또한 국회가 개정 농협법에서 부족한 부분을 논의하겠다고 만든 농협발전소위원회도 휴면 상태다. ‘농협 개혁’ 목소리가 잦아드는 형국이지만 “농협이 문제”라는 농민들의 성토는 여전하다. 매월 농협 전문가들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농협 개혁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

농협 ‘슬림화’ 없이 재탄생 불가능 … 농민·국회·농협 대화구조 필요

 

박형백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사무처장(45)은 농협 개혁에 대한 고민 자체를 한동안 중단했다고 한다. 농협에 존재하는 하나의 문제를 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지 않을 정도로 총체적 난국에 들어섰다는 판단때문이다. ‘농협에 희망이 있나’라는 자조 섞인 혼잣말이 그가 농협이라는 하나의 벽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온전히 전달했다.

박 사무처장이 농업에 발을 들인 건 약 20여년 전이다. 박 사무처장은 “처음엔 조수입 3,000만원이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재 7,000~8,000만원이 되도 다르지 않다. 10년이면 자리가 잡힐 줄 알았는데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리를 잡네, 마네 하고 있다”며 “잘못 되도 뭔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이라고 전했다.

대표적인 이유가 농협에 있다. 돈이 없으니 농협에서 영농자금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가을에 갚고 나면 없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이런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 먹고 살고 다만 1년에 얼마라도 저축하고 그런 재미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됐다”고 말했다. 농협 개혁에 대한 그의 고민은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박 사무처장은 농사와 함께 농민회 활동을 시작하고선 농협 때문에 처음 경찰에 잡혀갔다고 한다. 1999년 농협중앙회 지배구조 문제를 항의하러 상경해 서울 서대문 본관 정문을 뜯다 벌어진 일이다. 어쩌면 이 사건이 질긴 악연의 시작인지도 모를 일이다.

박 사무처장은 괴산군농민회 차원에서 지역농협 개혁 운동을 펼쳐왔고, 한때는 불정농협 이사를 맡기도 했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이 농협 개혁 전문가로 소개한 박 사무처장을 지난 10일 만나 농협 개혁에 대한 생각을 확인했다.

- 현재의 농협중앙회를 진단한다면

지주체제와 협동조합체제 중 어떤 체제가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돈을 벌어서 배당을 한다는 건 쉬운 논리다. 신용사업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주겠다고? 농민 요구만큼 줄 수 있을까? 농민들 입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바라는 삶의 방식은 농산물 제값 받고 파는 것이다. 천재지변이나 농사 못 짓는 상황이 아니면 가계를 꾸릴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리 안 된다. 지금 같은 구조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규모가 너무 커진 것이다.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이라는 구호는 좋다. 빈 수레가 속 빈 강정이 될 확률이 높다. 농협중앙회의 현재 구조에선 크게 달라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주체제는 이전에도 논란이 있었다. 한때는 매각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신용이나 경제사업을 매각하면 농민들 몇 년은 먹고 살 것이란 얘기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 웃으면서 했다. 원칙적으로는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안 하는 게 맞다. 슬림화하고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구조화돼있으니 간과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원칙을 지키면서 현실을 타계할 수 있을지는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 농협중앙회 개혁 어디서부터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경제사업연합회 체제에 대한 얘기가 끊임없이 나왔지만 왜 실천되지 않는가. 결국 그 중심엔 농협중앙회가 굴리는 어마어마한 돈이 있는 거다.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지배권력이다.

농협은 규모만 키웠다. 꼭 덩치가 큰 게 좋은 건가? 농협은 돈도 많고 사람도 많다. 번듯한 건물도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농협이 없다. 엄청나다. 자기들 먹고 사는 구조는 굉장히 탄탄해졌다.

신경분리할 때 농협은행 직원들은 농협 마크 안 달아도 은행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 당당함이 무섭다. 바닥에 깔려 있는 게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니. 농민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렵고 힘들다. 달라진 게 없다. 근데 농협은 20년 동안 끊임없이 규모화되고 성장하고 굴러가고 있다. 이상하다. 농민 삶의 방식이 잘못됐거나 농협이 잘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다. 농민들이 잘못했나?

농협이 더 잘 되려면 농협중앙회의 힘을 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없이 농협이 새로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교육사업과 지도감독 기능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정리해야 한다.

과격한 방식일 수도 있지만 조합원 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원로조합원과 도시조합원을 구분하는 방법도 있지만 무의미하다. 직접적으로 농사에 이해관계가 없으면 준조합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합의 직접적 의사결정에 자제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농협이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도시형농협에서는 농민이나 실제 농사짓는 조합원이 누군지도 모른다. 예전엔 촌이었지만 지금은 도시화가 다 진행됐다. 조합원이 되기 위해 농지원부 만들려면 300평 이상의 땅을 자경이나 임대를 해야 된다. 땅이 없는데 농협이 유지가 된다. 결국 조합원을 대표하는 조합장은 이들을 알고 있는 직원밖에 못하는 것이다. 도시형농협은 농협이 아니라 다른 이름, 방식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또한 농협중앙회장 선출 선거인단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은 1시·군에 1조합장이다. 이전엔 1조합당 1표였다. 남들은 넓히는데 농협은 줄였다. 전농이 내걸었던 전 조합원 직선제까진 못 가더라도 이것부터 복원해야 한다. 최소한 회원농협이 필요한 게 뭔지, 무슨 생각인지 그런 것들이 투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농협중앙회장의 제왕적 권한도 축소해야 한다.

특히 농민들은 끊임없이 두드려야 한다. 정치권을 움직여야 한다. 농민-국회-농협 3자가 모이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큰 단초가 될 수 있다. 국회의원 2명만 와도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래야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이 움직일지는 물음표다. 국회에 이미 농협발전소위원회가 있는데 개점휴업이다. 어쩌면 농협과 정치권이 한편이고 농민은 소위 ‘왕따’일 확률도 있다.

- 지역농축협 문제와 해법은?

대부분의 지역농협이 수탁사업을 많이 한다. 위험부담이 전혀 없는 사업이다. 수수료 장사다. 농협이 잘되려면 결국 매취사업을 늘려야 한다. 경제사업의 핵심은 농가들한테 좋은 가격 주고 사서 좋은 가격에 팔아야 한다. 하지만 농협이 그리 안한다. 새로운 사업 시도할 생각을 안 한다.

지금 농약은 다 계통구매를 한다. 다른 쪽에 받으면 더 싸게 살 수 있다. 다 안다. 직원들도 “더 싼 거 아는데 한 개라도 계통구매보다 높은 상황이 발생하면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면 안 한다. 지역농협과 농민조합원의 밀착관계를 높여야 한다. 안주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나서야 한다.

문제가 너무 많다. 어느 단추에서 이걸 꿰야 문제가 풀어질지 자신할 수가 없다. 농민운동에 있어 농협 개혁은 어떻게 할지 답을 내놓기 어렵다. 내년에 동시조합장선거가 있다. 일단 전농차원에서 출마자들을 모아 교육을 해야 한다. 아니면 100% 직원들 논리에 끌려 다닐 수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