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의 양면

  • 입력 2018.04.13 09:53
  • 수정 2018.04.16 13:34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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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한겨울 찬서리 된바람을 맞으면서도 틈만 나면 자라고 또 자란 마늘이 어느덧 수확을 한 달여 앞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에 뒤지지 않으려는 풀들도 키를 자랑하며 앞다투어 자랍니다. 마늘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풀을 뽑고 있는데 논어귀 옆길에서 '끼익'하는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일을 멈추고 쳐다보니 승용차가 길가에 멈춰섰고 운전석쪽 바퀴가 낮은 허공에 들려 있었습니다. 한 눈을 팔았나봅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새여서 큰 걱정은 않고 다시 일을 이어가려는데 운전사 아주머니께서 다급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오셔서 견인차를 불러달라  하십니다. 아니라고 그냥 트랙터로 끌면 되겠다 하니 손사래를 치십니다. 
  
안 하겠답니다. 남편께 말씀드리면 지레 화를 내고 탓을 하신답니다. 차를 복구할 걱정보다, 놀란 가슴 달래는 일보다 남편의 반응에 더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3자의 개입이 유리합니다. 둘이 있을 때는 큰소리를 치더라도 누군가가 있으면 체면이 발동되니까요. 천연덕스럽게 남편분께 전화해서 내차가 빠졌으니 구해달라 했고, 도착했을 때는 상황파악을 하시고는, 허참, 여기서 이런 하찮은 실수를..허참..하는 수준으로 넘어가는데 아주머니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돕니다. 
  
이 집만의 문제라곱쇼?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요. 나들이를 같이 가게 된 언니가 갑자기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걱정을 하는데, 가스렌지 위에 물주전자를 올려놓고 왔답니다. 이럴 경우 당연히 남편분께 전화를 해야하는데 같이 있던 언니를 거쳐 이웃집 아저씨께 가스불을 꺼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나다닌다고 고함을 지르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앞서 말한 사례의  언니들은 평소에 남편들이 실수할 경우, 혹여나 남편이 그런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달래는 일을 먼저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낮아져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 위축이 되곤합니다. 이런 관계가 수십년 이어져 오다보니 서로의 감정대응이 평등하지 못 한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부부사이에서 서로의 실수쯤이야 관대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의, 다시말하면 약자의 실수는 응당 비난받기 일쑤입니다. 가부장사회의 최대장점은 질서이겠으나 한편으로는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 모르쇠하는 것이 허다합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요.

 농촌사회의 봉건성이 세상에서 여성농민의 지위와 역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궤를 맞춰 가정내에서도 여성의 감정이 공공연하게 훼손되는 일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공공정책을 쓰임새에 맞게 제대로 바꾸는 일도 쉽지 않지만, 가정내의 민주화도 더딥니다. 불균등한 관계가 알아서 바뀌는 일은 드무니까요. 어떻게 밥주걱을 들고 각 가정앞에서 연대집회라도 해야할까요? 글쎄요. 눈에 띄는 경우는 특수한 경우이고, 대부분 집안내 사정을 감추기 급급하니 더디게 더디게 바뀌는 것이겠지요. 어찌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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