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③ 남파간첩이 극본을 썼다?
김삿갓 방랑기③ 남파간첩이 극본을 썼다?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8.04.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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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기가 처음 전파를 탔던 1960~7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남북 간의 교류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북한이 워낙 폐쇄사회였기 때문에 제3국을 통해서 북한의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5분극의 작가들은 어디서 무슨 재주로 매일 매일의 이야깃거리를 수집했을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없는 사실을 줄곧 꾸며 쓸 수도 없었을 텐데.

이상락 소설가

KBS 라디오 본부장을 지낸 조원석씨의 얘기는 이러하다.

“물론 북한 사회의 이모저모를 알려준 사람들이 있었지요. 남파 간첩이나 귀순자들이었어요. 나중에는 아예 그들을 김삿갓 방랑기의 작가로 등용하기도 했어요. 대표적인 분이 이철주라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은 김삿갓 방랑기를 1,000회 이상이나 썼어요. 해주에서 고등학교 교장을 하다가 남파 간첩으로 인천에 왔다 붙잡힌 케이스였지요.”

당시를 기준으로 해서 가장 최근에 북에서 넘어온 사람일수록 보다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들을 작가로 기용한 주체는 프로그램의 연출자가 아니라 국가 정보기관이었다.

특히 이철주는 북한에서도 문필활동을 했던 사람이어서 ‘5분 드라마’의 작가로서 적격이었다. 그러니까 체포된 간첩이나 귀순자들을 직업 알선 차원에서 방송작가로 기용했으니, 정보기관에서 지속적인 감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초창기 김삿갓 역을 맡았던 성우 김현직씨(2002년 작고)의 얘기도 들어보자.

“중앙정보부에 아예 <김삿갓 방랑기> 담당자가 따로 있었어요. 작가들이 중앙정보부에 찾아가서 뭣 뭣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요청을 하면 그 직원이 데리고 가서 자료 열람도 시켜주고 그랬지요. 프로그램 녹음할 때에는 아예 그 직원이 방송국 스튜디오에 나와서 떠억 버티고 앉아 있었는데…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정 직원이 감시를 하고 있으니 연기자나 제작진이 얼마나 긴장하겠어요. 살벌했지요.”

초기에는, 작가가 원고를 집필하면 중앙정보부의 담당자가 그 원고를 가지고 본부에 가서 검열을 마친 다음에 연출자에게 넘겨주었다. 한 작가가 원고를 모두 맡아 쓰는 게 아니라 며칠 분씩 분담해서 쓰기 때문에 작가들끼리 서로 어울릴 시간이 많았는데, 그들 중에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앙숙지간의 사람들도 있었다.

“김중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철주와는 달리 해방직후에 서북청년단 활동을 하다 남쪽으로 내려와서, 한국전쟁 때에는 남한의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짝코>라는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했지요. 해병대에서 이 사람에게 ‘명예해병 1호’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은 이철주를 아예 대놓고 빨갱이라고 불렀어요. 북에서 공산당원으로 호의호식하다가 간첩으로 남파되었다 잡혔기 때문에 자신과는 출신이 다르다는 거지요. 두 사람은 방송국에서 만나기만 하면 ‘야, 빨갱이 동무!’ ‘뭐이 어드래?’ 하면서 으르렁댔지요.”

한 번은 왕년의 서북청년단 단원이자 명예해병 1호인 김중희가 일행을 이끌고 광화문으로 나갔다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김중희가 골목을 지나다가, 여자와 티격태격하고 있던 한 사내에게 주먹을 날려버렸다. 파출소로 잡혀간 김중희가 소장의 책상을 내려치며 호통을 쳤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이런 사람이야!”

김중희가 꺼내 보인 증명서에는 반명함판 사진이 붙어 있고, 양쪽에 ‘반공’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증명서 중앙에 ‘003-0123’ 따위의 숫자가 박혀 있었다. 사실 그것은 무슨 대단한 ‘쯩’이 아니라, 김삿갓 방랑기의 집필에 필요한, 북한 관련 특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열람증이었다.

그 숫자라는 것도 별것이 아니라, 열람증을 발급해 주면서 군인은 001, 군속은 002, 그리고 민간인은 003 하는 식으로 번호를 매겨놓은, 말하자면 분류기호 같은 것이었는데, ‘반공’이라는 붉은 글자에 기가 질린 파출소 소장이 “어이구,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꾸벅 인사까지 하고나서 일행을 즉시 방면해 주었다. <김삿갓 북한 방랑기> 시절에나 있을 법한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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