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내 못자리 식당, 올해도 ‘성업 중’

철원농협, 관·군 협조로 18년째 공동취사장 운영

  • 입력 2018.04.08 10:55
  • 수정 2018.04.08 10:5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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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2일 문을 연 철원농협 못자리설치 공동취사장에서 못자리 작업을 마친 농민과 농촌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철원 북쪽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군정 본부로 쓰이던 노동당사가 있다. 치열한 전투를 거쳐 폐허로 남은 노동당사는 ‘분단의 상징’인 동시에 북녘 땅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 너머엔 사람 사는 마을이 없지만 곡식은 자란다. 선 바깥에 집을 둔 수백 명의 농민이 매년 검문소를 드나들며 무인지대에서 영농을 이어가고 있다. 통제 하에 출입하는데다 일몰까지만 머무를 수 있기에, ‘점심식사’의 해결은 늘상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곳 농민들에게 4월 한 달은 잠시나마 끼니에 대한 걱정을 잊을 수 있는 시기다. 임시 대형식당이 열리기 때문이다.

철원농협은 매년 4월마다 이전에 군이 수색대대의 막사로 쓰던 건물에서 공동취사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18년째, 농민과 농촌노동자, 대민지원을 나온 군인들까지 매일 700명이 넘는 인원이 오전 작업을 마치고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공동 작업이 필요한 못자리를 특수한 환경에서 치러야하는 이곳 농민들에 대한 배려다.

지난 2일 현장에서 관리 감독을 맡고 있던 철원농협 김현식 과장은 “관할 6사단의 시설·출입 협조와 철원군의 지원을 받으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식사 준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농민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식사는 무료 제공되는데다, 육류를 비롯한 4~5가지 반찬과 국, 후식까지 준비돼 불만이 나올 거리가 전혀 없어보였다. 이날 첫 식사를 마친 농민들 역시 만족스러운 기색이다. 후식으로 수입과일인 바나나가 보인 게 농업지 기자로서 유일하게 지적할 수 있는 흠이었다.

“농사꾼이 밥 싸가지고 가서 펼치고 그래야하는데 여기서 먹기만 하고 가면 되니까 얼마나 좋아.”

식사 준비를 떠맡게 되는 여성농민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다. 민통선 밖 화지5리에 사는 정모(71) 할머니는 식당이 없을 땐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밥하고 또 다녀와서 설거지하는 것 모두 여성의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끼니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은 주민들은 농협으로부터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또 다른 여성 농민 엄모씨와 이야기하던 도중 한 남성농민이 다가오며 밥을 먹었느냐 묻는다. 엄씨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재빨리 ‘내가 밥 사놨어. 얼른 가서 먹어!’라고 응수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농민이 ‘아이고, 자기가 먼저 하려다가 당했구먼’이라며 미소 짓는다. 식사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다보니 밥 먹는 자리는 자연스레 활기차고 생생하다. 이곳저곳에서 간만에 이웃을 보며 소통하는 농민들을 엿볼 수 있었다.

엄씨 등 모여 있던 여성농민들은 ‘철원읍은 이제 이거 없어지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엄씨는 조합원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농협을 칭찬하는 한편 농번기 전체로 취사기간이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못자리 할 때뿐만 아니라 모내기 때도 해주면 ‘굿’인데, 그것까지 바라기엔 욕심이 과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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