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농산물에 빼앗긴 20년, 지금까진 예고편이다

[ 기획 ] 자유무역은 우리 농업 얼마나 망가뜨렸나 ①농산물

  • 입력 2018.04.07 08:24
  • 수정 2018.04.07 08:2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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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로 모든 농산물은 자유무역 ‘상품’에 포함됐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라 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농축산물 수입자유화에 동참했으며 이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도 발 빠르게 수용했다. 2018년 현재 FTA체결 국가 수만 52개, 우리 먹거리 시장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20년 이상 지속된 수입농산물의 범람으로 우리 농업·농촌·농민은 어떻게 몰락하고 있는지 2회 기획으로 살펴본다. 

밀, 생산량의 134배 수입
옥수수, 생산량의 117배 수입
콩, 생산량의 10배 수입

1990년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43.1%였다. 지난 2016년 곡물자급률은 23.8%로, 자급능력이 절반이상 감소했다. 품목별로 보면 더욱 우려스럽다. 쌀만 100%에 근접한 자급률을 보일 뿐 2015년 기준 △밀 0.7% △옥수수 0.8% △콩 9.4% 등 한자릿수 자급률로, 이는 대부분 수입 곡물로 먹거리가 차려지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급감한 자급률과 반대로 곡물수입량은 매년 폭증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전남도의회 농어촌발전연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2015년 국내 밀 생산량은 2만7,000톤, 수입량은 363만1,000톤으로 생산량의 134배가 넘는 물량이 수입됐다”고 밝혔다. 콩 역시 13만9,000톤이 생산됐는데 수입량은 131만7,000톤으로 생산량보다 9.5배가량 더 많다. 옥수수는 국내 생산과 수입에 더 큰 격차를 보여 8만2,000톤을 생산하고 963만2,000톤을 수입해 117배 차이가 난다. 이 쯤 되면 국내산 신선 농산물은 가정용 소량구매에서나 쓰이고, 식품대기업이 쓰는 가공용 곡물원료는 100% 수입산이라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수입농산물 탓에 경작면적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수미 상임연구원은 이같은 변화에 대해 “콩 재배면적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 2000년 8만6,000ha에서 재배되던 콩은 2017년 4만6,000ha로 줄었다. 17년 동안 여의도 면적 (290ha)의 140배와 맞먹는 콩 재배면적이 사라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 양념채소류인 고추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건고추는 지난 2000년 7만4,000ha에서 재배돼 19만3,000톤을 생산했으나, 2017년에는 2만8,447ha에서 5만5,714톤이 생산됐다. 지난해 생산량은 198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 상임연구원은 “건고추 재배면적은 지난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면적도 생산량도 크게 줄었는데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이런 모순은 저율관세로 들여오는 냉동고추와 다대기가 국내 건고추 소비시장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연구원은 “건고추, 냉동고추, 다대기를 포함하면 고추관련 수입량은 국내 건고추 생산량을 훌쩍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고추값은 수입의 영향에 민감한 작목인데다 품이 많이 드는 농사인 탓에 재배면적은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2018농업전망 자료에 따르면 당근도 지난 2000년 중국산 수입이 본격 시작되면서 재배면적이 감소하고 있다. 2000년 4,383ha였던 당근 재배면적은 연평균 4%씩 감소해 2016년에는 절반수준인 2,230ha로 조사됐다. 가장 많은 면적인 겨울당근은 2000년 2,541ha(10만7,000톤 생산)에서 2016년 899ha(4만2,000톤)로 연평균 6%씩 줄었다. 반면 2000년 1만톤 수입되던 당근은 2016년 10만톤으로 크게 증가했다. 제주도에서 한 해 생산되는 겨울당근 보다 2배 이상 많은 당근이 수입되는 실정이다.

과수와 축산물도 수입물량에 자리를 내주기는 마찬가지다. FTA는 해가 거듭할수록 관세감축률이 높아진다. 국내산 과일 주 생산시기에 피해를 줄이고자 시행된 계절관세 적용품목, 오렌지·포도·체리 등은 올해부터 1년 내내 무관세로 들어온다. 돼지고기, 한·육우, 닭 등은 관세가 점진적으로 철폐돼 2028년 이후 모든 FTA 체결국에서 관세 없이 수입된다.

수입농축산물이 준 피해는 아직 예고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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