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직원에게도 삶의 애환이 있다

  • 입력 2018.04.06 09:51
  • 수정 2018.04.06 09:57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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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농사를 시작할 당시의 나에게는 신분상 제약이 붙어 있어 어디 취직하기가 힘들었다. 당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신분이었기에 취직은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이 당선이 되고는 잠시 갈등을 했다. ‘대통령 직을 걸고서라도 쌀은 지키겠다’는 김영삼이 당선된 그 이듬해, 대대적인 사면복권조치가 이뤄지면서 나도 사면복권이 됐다.

생활고를 겪던 나를 걱정하는 주변의 몇몇 분께서 취업을 권유했다. 여러 취업 권유 중의 하나가 지역농협으로 구분된 그 때의 단위농협이었다. 1993년 3월쯤에 아이는 둘이나 태어나 있었고 농사로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인간적으로 ‘취업을 할까 말까?’하는 갈등을 많이 했다.

그런데 취업을 한다고 해도 지역농협에 취직하기는 싫었다. 그 이유는 지역농협 직원들의 봉급이 너무 박하고 근무조건이 너무 열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1990년, 그 시기에 농협 직원들의 급여와 근무여건은 여러 면에서 매우 열악했다고 생각된다. 사실 그 시기엔 공무원들의 급여와 처우도 매우 박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일정정도의 규모만 되면 농민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좀 나은 편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시간이 흐르며 농협 직원들의 여러 여건들이 조금씩 개선됐고 그 때에 비하면 상당히 나아졌다.

지금은 지방직 9급 공무원 선발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거쳐야하는 시기가 됐다. 농협 종사자나 지방직 공무원들의 처우는 과거에 비해 매년 나아져서 상당히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밖에서 보기에는 펜대를 잡은 사무직으로 볼지라도 농협 직원들의 업무는 심히 고단한 내용이 많고 늘 실적 달성에 시달리고 있다. 개인에게 할당된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많은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조금씩 개선된 지역농협의 근무여건

여러 농촌지역에서 ‘농협이 돈 몇 푼 벌어서 직원들이 다 가져간다’고 하지만 1990년을 기준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지금보다는 농민들의 사정이 좋았고 지역농협 직원들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그렇지만 지역농협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농협의 일 년 사업계획을 기안하면서 매년 차곡차곡 여러 근무여건을 개선해 왔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고령화되고 인정(?)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개선되는 농협 직원들의 기안 내용을 이사회·대의원 총회에서 승인해 줬고 그 내용이 25년 넘게 쌓이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상대적으로 열악해진 농민들의 일부가 ‘농협이 벌어서 직원들이 다 가져간다’는 넋두리를 하고 있지만 농업이 어려워져서 그렇지 농촌지역 농협 직원들의 여러 내용들이 현격하게 좋아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농협의 각 법인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농촌지역의 농협들은 여전히 여러 내용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하다. 며칠 전 인근 농협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자신의 실적에 얽매여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수지를 내기 위한 보험 사업 등의 목표량을 다 채우지 못해 급여를 받아서 자폭(?)을 감행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농협이 수지를 내는 과정에서 직원들에게는 예수금 목표, 카드 할당량, 보험 수수 이익의 개인 할당 같은 목표치가 있고 그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많은 직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농협은 매년 하반기가 되면(통상 11월 말) 다음해의 사업계획을 작성하는데 직원들의 몫(?)을 곳곳에 조금씩 배치해 둔다. 농협에 근무하는 노동자로서 그 대가를 요구하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과정들은 전부 농민들이 승인해 준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에는 자기중심의 욕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속담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물고기 잡이를 해도 자기 망태에 큰 고기를 담는다’고 하지 않던가? 부자간에도 자기 망태에 큰 고기를 담는다는데 하물며 남이면 오죽하겠으며, 공동체 정신이 희박해지는 자본주의 사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농협이라고 그 구성원간에 특별히 공동체 정신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농협에서 근무한 직원들과 지나간 과거는 잊고 현재만 따져서 대화를 하고, 그 내용을 이끌어 가려면 대화가 쉽지 않다. 지나온 흐름이 있으면 앞으로의 흐름도 있다. 앞으로의 흐름을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이 잘 예측해야 한다.

농협의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기본적으로 직원들은 비용에서 명확히 자기들 부분의 내용을 명시한다.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농민들도 사업계획에서 비용으로 구분될 수도 있는 교육지원사업량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농협 회계에서 특별히 허용되는 교육지원사업 부분은 수지를 정산하기 이전의 농민(조합원)들 몫이고, 급여를 포함한 복지비용 등은 직원들의 몫이다. 일 년 동안 경영할 농협의 사업에서 미리 자기들의 몫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은 비용이 나중에 수지에 포함되더라도 각각의 망태기는 분명히 다르게 해 담아 두는 것이다.

농협이라는 틀 속에서 직원들 몫, 농민들 몫을 정확히 나눠서 계획하는 것이고 그것은 해마다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변화-흐름을 농민들도 잘 봐둬야 하지만 법으로 따진다면 농민들 몫은 안줘도 불법이 아니고 직원들의 몫은 안주면 불법이 된다.

즉, 교육지원사업비는 30%만 집행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직원들의 급여는 60%를 지급해도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 농협은 직원과 조합원이 가족이 아니기에 농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관련 내용을 법으로 정확히 나눠 놓고 있다.

적극적으로 일할 조건 만들어야

조합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우리 농협의 예대 비율이 68% 즈음되기에 예대 비율이 80%로 올라가도록 사업 방향을 설명했다. 약간 퉁명스럽게 돌아온 직원들의 반응은 ‘대출을 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직원들과의 논의는 저녁시간이었다.

내가 그날 낮에 본 지역신문에 우리 동읍지역의 도로 개설에 따른 보상이 공고된 것이 있었다. 전부 50필지 정도의 과수원, 전·답이 공고된 자료에 ‘이해관계자’란이 있고 이해관계자란에 동읍농협으로 표기된 것은 전체 공고량의 30% 정도였다. 공고된 약 50필지 중에서 20여 필지가 근저당 설정이 돼있는 것으로 보였고 대출이 시행된 것으로 보였는데, 그 중에서 우리 농협이 이해관계자로 표기된 것은 6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필지들은 우리 농협 외의 다른 금융기관에 근저당 설정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공고한 것이었다. 그 자료를 근거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직원들과 분석했다. 여러 이유로 인해서 지역민들이 우리 농협을 이용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이었다.

거의 대다수 토지 소유자가 지역농협 조합원이었지만 조합원들의 다수가 금융소비자로서 지역농협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지역농협의 금융영업방식과 금융소비자의 이익에 지역농협이 제대로 복무하지 않았기에 그러했다는 분석 결과가 도출됐다.

직원들은 경쟁력이 있는 사업방침이 서고, 그 방침에서 희망이 보이면 적극적으로 일을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직원들은 조건을 탓하고 일의 효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즉, 많은 농협 직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직원들은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조합장이 되고 넉 달 정도가 지난 시기였다. 대부계 앞에서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떤 분이 우리 농협 대부업무 담당 직원에게, 엄청난 욕을 퍼붓고 있었다. 2~3분에 걸쳐서 그 분이 왜 욕을 하고 있는지 상황을 판단하고는 그 분에게 ‘미안하다고, 고치겠다고, 당장은 못 한다’고 사과했다.

그 내용은 2010년 당시 우리 농협의 이자가 비싸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융통하려다가 이자가 비싸면 이용을 피하지만 농협이 이자가 비싸면 금융소비자(조합원까지도)가 욕을 하고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나도 농협에서 수차례 걸쳐서 돈을 빌려 썼지만 늘 걱정은 ‘돈을 빌려줄까? 안 빌려 주면 어쩌지?’였는데 지금은 금융이용 고객이 이자율을 엄밀하게 따지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 판매나 자재의 이용도 꼭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조합장을 하면서 그 내용들에 경쟁력을 갖추는데 3년 이상이 걸렸다. 농협이 경쟁력이 없으면 농민들에게 외면을 그냥 당하는 게 아니고 욕을 듣고 당하게 되는 것이다. 농민들이 욕을 한다고 해서 당장 그 내용들을 뜯어 고칠 수는 없었다.

경영자체가 안되니 그 내용들을 목표치까지 고치는 데는 사소한 것도 몇 달, 수수료를 조정하는 것은 몇 년에 걸쳐야 되는 것들이 많았다. 주변에 한 여러 농담 중에서 어른들이 욕 들으면 오래 산다고 하던데 그러한 것들을 시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조합장 재임 중에 욕 들은 것만 하더라도 100살은 훨씬 넘게 살 거라고 했다.

내용에 따라 어떤 것들은 즉시 시정이 되지만, 다수의 농협 사업들은 시간을 두고 개선해야 되는 것들이 많다. 여러 수수료를 낮추는 일은 사업량을 규모화 시켜가면서 규모화에 비례해서 이용자 비용부담을 낮춰가야 시행이 가능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즉시 시정을 요구하는 것-예를 들어서 대출 이자를 전체적으로 0.5% 뚝 낮추는 요구들은 사실상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예대마진은 특별히 시장이 우호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일 년에 0.3%를 조정하는 것도 힘들다. 한꺼번에 ‘뚝’ 조정하자는 것은 사실상 농협을 경영하지 말자고 하는 것과 똑같다.

직원들의 이익 추구는 자연스러운 일

처음 촌에서 농사지을 때, 1990년경에는 소 40마리 정도를 키우거나 하우스 900평 정도만 경작해도 생활이 충분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3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과 비교해보니 소 120마리를 키우거나, 하우스 2,000평을 농사지어도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짐작이 힘들다. 그만큼 농업관련 시장이 변해 온 것이다.

농협 직원들과 상담을 해보면 직원들은 오랫동안 여러 사업에서 능동성을 잃고 수동적으로 많이 변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직원들의 그 수동성이 조합원들의 눈에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 창원지역의 경우 대다수 직원들이 인근의 도시 다가구 주택에 살고 있는데 그들의 삶도 절대로 넉넉하지 않다. 밖에서 보기에는 펜대를 잡은 사무직으로 볼지라도 그들의 업무는 심히 고단한 내용이 많고 늘 실적 달성에 시달리고 있다.

소 40마리 정도만 키워도 인간적인 삶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고 하우스 900평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 인근에는 하우스를 몇 천 평씩 하는 농가가 있고 그 농가를 따라가는 농가들도 많다. 이미 그 흐름들이 농업의 여러 곳을 망치고 있고 규모화 된 농가들은 농협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농협도 중앙회를 중심으로 규모화를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우리 농업은 규모화로 경쟁력을 갖추기는 힘들고 어정쩡한 규모화는 전체 농업의 틀을 그르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흐름들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같은 농협조차도 존속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우리 농민들도 그러하듯이 농협 직원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사업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규모를 늘려 수익을 맞추려고 하듯이 농협 직원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용인한 상태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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