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희망 품고 살아가는 게 농부”

‘인생 2막 본무대’ 즐기면서 희망으로 농사짓는 이택현씨

  • 입력 2018.03.30 22:04
  • 수정 2018.03.30 22:0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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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모처럼 포근해진 아침날씨인데 단잠 깨운 주인을 원망이라도 하듯 트랙터가 툴툴거리며 하우스 안을 누빈다. 논산시 가야곡면 이택현씨의 하우스에선 이른 아침부터 흙먼지가 날린다.

이 하우스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까지 줄곧 벼 육묘장으로만 써온 공간이다. 못자리 후 땅을 놀리는 게 아까워 지난해부터 여기에 밭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겨우내 남아있던 무밭이 갈아엎어지고, 올해는 고추 모종이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요즘은 농사가 몹시도 얄궂다. 재작년, 수확한 쌀의 절반을 가을에 출하하고 절반은 가격이 오를 때를 대비해 남겨뒀었는데 그만 된통 폭락을 맞아버렸다. 작년엔 어땠나. 재작년의 아픔을 교훈삼아 가을에 몽땅 출하했더니 출하하고 나서 가격이 쑥쑥 오른 것이다. 설상가상 하우스에 처음으로 심어봤던 무는 대폭락을 맞아서 단 한 뿌리도 내다팔지 못했다.

지난달 23일 논산시 가야곡면 농민 이택현씨가 트랙터로 하우스 내부의 땅을 고르고 있다.

하지만 이씨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농업에 뛰어든 지 십수년. 아직까진 농사짓는 게 재미있다는 그다. “컴퓨터만 들여다보면서 일할 땐 내 인생이 모니터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트랙터를 몰고 다니고, 그 땅이 착착 메워지고, 어느새 다시 초록색으로 변해가고, 그런 과정을 함께하는 게 참 뿌듯하죠.”

이씨는 농사를 ‘인생 2막의 본무대’라고 표현한다. 그 무대 설치를 위해 직장을 다니면서 5년 가까이나, 준비를 열심히도 했다. 힘겹게 마련해 놓은 무대 위에서 하고싶을 때까지, 오래오래 즐기면서 농사짓는 것이 이씨의 목표다.

이따금 대학생 아들에게 “농사나 지어라”라고 말을 건네면 제법 농사일을 거들어 본 아들은 “아빠,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응수한다. 일은 고된데 소득은 적고, 극장이나 병원을 한 번 가려 해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그 열악한 현실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씨는 보란 듯이 새해 농사를 준비한다. “농업은 분명히 희망이 있는 분야라고 봐요. 예전처럼 전통적인 생산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담아내는 농업, 소위 말하는 사회적 농업, 그런 것들에 관심갖고 있어요.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농업을 하고 싶어요. 같이 두런두런 얘기하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고. 좋잖아요.”

한바탕 일을 마친 트랙터가 다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갈아엎은 하우스엔 이달 하순경 모판이 들어서고, 5~6월경 모를 논으로 내고 나면 고추 모종을 정식하게 된다. 농산물 값이야 걸핏하면 폭락하기 일쑤지만, 올해는 더 좋으리란 희망이 있기에 힘을 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해마다 항상 희망을 품고 사는 거죠. 농부는 그런 것 같아요. 힘들어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또다시 희망으로 시작하는 농사. 올 가을엔 어떤 결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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