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협 이사 도전기

  • 입력 2018.03.30 21:44
  • 수정 2018.03.30 21:46
  • 기자명 이영수(경북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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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경북 영천)

6.13 지자체 선거열기로 전국이 뜨겁다. 사실 농촌지역에서는 이·감사와 조합장을 선출하는 조합원 임원 선거는 지자체 선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관심과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조합원으로 있는 임고농협만 하더라도 지역면민 4,500여명 중 절반인 2,3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고 자산이 2,000억원이 넘는다.

그래서 조합장은 1~2년 만에 교체되는 면장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농촌의 작은 면단위에 2,000억원의 자산을 가진 집단의 조합원으로서 그만한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경상도 보리문디 형님들과 술 한 잔 거하게 취해도 유독 술맛이 나는 안주도 농협 이야기다.

정치성향은 달라도 농협 이야기만 나오면 대동단결이다. 그만큼 농민들에게 농협은 불만과 애증의 대상이다.

지난달 초 임고농협 이사선거가 있었다. 여성조합원이 30%를 넘어 여성이사 1명을 포함한 6명의 이사를 선출했다.

이사선거를 앞두고 4년여 동안 농협공부모임을 함께 한 형님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사선거에 나서자며 분위기를 만들었다. 출마를 고민하던 형님은 주저했고 분위기도 평소와 달랐다. 지난해 감사선거 낙선 영향도 있었고 무엇보다 4년여의 공부모임이 지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달리 구체적인 성과를 못 만든데 대한 무기력함이 커 보였다.

후보등록 마감 일주일 전까지 진전이 없어 긴급히 모인 공부방 회원들이 “이번에는 자네가 한 번 나가야 되겠다”고 한다. 인기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작가 혹은 PD가 스스로의 역할이라 여기고 있던 내게 뜬금없이 연예인이 되라고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갑작스런 제안에 고민하는 새 소문이 퍼져 진짜 이사로 나오는지 묻기도 하고 진심어린 우려와 격려도 해 주셨다. 자네 나이도 적지 않은데 이제 나올 만 하다는 분들도 계셨고, 자네 뜻은 훌륭한 줄 알지만 선거라는 게 돈 안 쓰고 된 적이 없는데 차라리 지자체 선거나 조합장 선거에 나오지 농협 이사 선거에 굳이 왜 나오려고 하느냐며 걱정해 주는 분들도 계셨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등록 사흘 전에 최종 이사 후보로 등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는 임고농협 경제상무로 계시는 형님의 반대가 생각보다 완강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후보등록 결과 1명을 선출하는 여성이사는 3명이 등록했고, 5명을 선출하는 남성이사 후보는 6명이 등록했다. 기호추첨을 위해 후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호추첨 직전 4선을 한 형님이 “영수가 등록 안 할 줄 알고 등록했는데 이제 후배들 길 틔워 주는 게 맞는 것 같다”며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용단을 내렸다. 남성이사는 무투표 당선이었다. 다들 깜짝 놀랐다.

20여년 만에 돈 선거 없이 모양 좋게 선거했단 칭찬도 들리고, 안하던 짓 해서 지역경기 다 죽였단 소리도 들렸다. 어쨌든 새 도전과 변화에 대한 조합원들의 기대가 크단 걸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종영을 앞두고 있다. 애청자로서 안타깝지만 출연자들이 무모한 도전을 펼치며 시청자들에게 준 웃음과 감동은 잊지 못 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약간 싱거웠을지 모르나 나름 치열했던 나의 농협 이사 도전기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배우가 될지 작가나 PD 역할을 할진 모르나 농업과 농협이 바로 서는 그 날까지 어쩌면 무모하게 보일 도전을 계속할 셈이다.

아울러 지금도 마을에서 농협 대의원이 되기 위해 오래된 세습체제에 용기 있게 도전하는 이들과 20~30만원의 여비만 타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농협 대의원총회에서 온갖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용기 있게 발언을 하는 이들과, 또 내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무한도전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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