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농민들 올해 농사 기지개

  • 입력 2018.03.30 11:16
  • 수정 2018.03.30 11:19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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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어김없이 농민도 기지개를 켠다. 새 정부의 농업홀대론, 지지부진한 농정 개혁에도 불구하고 최북단 철원평야에선 이미 못자리가 시작됐다. 지난달 28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의 한 들녘에서 농민들이 볍씨를 뿌린 모판을 논 위에 가지런히 놓고 있다.한승호 기자

“춥지도 덥지도 않은 3월의 날씨. 벌써부터 논밭에 나가 구슬땀을 흘리는 농민형제들이 많다. 하지만 죽어라 일해도 쌀값은 오르지 않고 20년 전 쌀값과 똑같다. 고추, 배추, 양파 심어 재미 좀 볼까하면 여지없이 수입해서 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농사짓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는가.”

지난달 27일 전북 정읍천변 어린이축구장에서 열린 정읍농민 영농발대식에서 박하담 정읍시농민회 사무국장의 발언이다. 박 국장은 “오늘은 논일 제껴두고, 밭일일랑 걱정 말고 허리띠 풀고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풍년농사를 기원하자. 또 우리 농업의 문제를 고민하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큰 힘을 모으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 바람대로 이날 영농발대식에선 어둑한 농정 현실 속에서도 봄 햇살 사이로 더해지는 막걸리 잔 속에 잠깐이나마 웃는 농민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영농발대식이 한창이다. 농정개혁, 농민헌법, 농민수당,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농협도 멀게만 보인다. 영농발대식은 어디 한 곳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지만 그저 묵묵히 땅을 일구겠다는 농민들의 선포다.

올해 농사를 시작한 농민들의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강원도 철원의 양지리를 찾았다. 철원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 양지리에선 25명 안팎의 마을 주민들이 볍씨살포기를 통해 모판에 상토를 뿌리고 볍씨를 심어 논에 옮기는 못자리가 한창이었다. 아직까지 못자리만큼은 품앗이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게 황용하(59) 전 양지리 이장의 설명이다. 황 전 이장은 “농사꾼에게 한겨울 지나서 농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큰 기쁨은 없다”며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농사를 시작하는 기쁨도 크지만 그만큼의 걱정도 뒤따른다. 쌀값 때문이다. 황 이장은 “물가도 인상되고 임금도 매년 10~15%씩 오르지만 쌀값만 제자리다. 자녀들 둘씩 대학에 보내고 땅을 안판 농민이 없다. 농민들이 헤어나올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못자리를 진두진휘한 논 주인 심상오(58)씨도 “농기계값, 비료값 등 농자재값은 다 오르는데 쌀값만 그대로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전했다. 쌀값 얘기에 주변에서 함께 일하던 주민들은 너도나도 성토의 목소리를 한마디씩 보태며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황 전 이장은 “쌀값이 오르고 안 오르고를 떠나 풍년을 원하는 건 모든 농민의 마음”이라며 풍년과 함께 마을 주민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봄이다. 올해도 한 해 농사를 위해 기지개를 켠 농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볍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풍년과 함께 농업·농촌·농민의 끈을 지탱할수록 있도록 그들의 건강이 허락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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