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대통령 공약을 국민이 청원해야하는 사회

  • 입력 2018.03.30 11:14
  • 수정 2018.03.30 11:18
  • 기자명 김영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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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에 대한 국민 불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는 이 사안으로 시민사회는 지난달 12일부터 청와대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온 국민이 가슴 아파했던 세월호 사건이나, 비교적 단기간에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눈앞에서 생명이 죽고 사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천천히 전 국민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기에 GMO는 상용화돼 식탁에 오른 지난 20년간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앞선 정부들처럼 이 정부도 ‘안전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취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GMO를 학교급식에서 퇴출하고, 표시제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하고 시민사회진영과 협약한 바 있다.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농업을 고민해온 시민사회의 요구가 반영된 약속에 기대가 커진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이 나서 국민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우리식탁을 완전히 장악해서 원하던 그렇지 않던 GMO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국민으로서는 최소한 알고 선택할 권리 정도는 서둘러 보장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GMO를 원료로 생산했어도 표시를 안 해도 되고, Non-GMO 원료로 생산했어도 표시할 수 없으며, 심지어 Non-GMO 제품만을 취급하겠다는 상점이 식약처로부터 공격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벗어날 줄 알았다. 당장 어렵다면 입장과 태도의 변화라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무총리실 관장 하에 내놓은 ‘식품안전개선 종합대책’은 국민의 90% 이상이 불안해하는 GMO 문제에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고, 변화의 조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안전이 분명하게 확보되지 않은 식품을 국가가 나서서 ‘먹어도 좋다’고 주장하는 경우, 오히려 그 배후를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괜찮으니 가만있으라”, “정부가 충분히 확인했으니 안심하고 사용하라”고 해서 벌어진 앞서의 두 사건을 상기해보라. 바닥으로 떨어진 식량자급률을 높여 국민을 배불릴 계획을 세우는 농정이 아니므로 광우병이 의심되는 소를 수입해 먹이고, 농약과 살충제로 범벅된 농산물과 GMO를 나서서 수입하는 정부이므로 그 배후에 영리에 눈 먼 기업과 그에 결탁한 관료와 학자들이 숨을 공간은 충분하다.

물론 개혁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 만무하다. 적폐를 만들고 축적해왔던 세력들이 스스로 물러서는 것 역시 만무하다. 대통령은 국민의 먹거리나 농업을 챙기기에는 너무 바빠 보인다. 그래서 단 한마디 언급도 못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곱다시 봐준다고 해도 정부가 대통령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진대, 안보와 남북관계 말고 무슨 변화가 있는지 감지하기 너무나 어렵다. 심지어 국민 먹거리와 농업을 책임지는 핵심관료들은 임기 시작 8개월 만에 정부를 뛰쳐나가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약속을 이행하라는 기자회견과 청와대 국민청원이 서글픈 이유다. 누군가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죽을 각오로 폭로를 해야만 법이 보호할 준비를 하는 사회, 청원인 20만 명을 채워야만 겨우 응답하는 정부, 대통령의 공약조차 국민이 다시 챙길 것을 촉구해야만 하는 사회가 진정 안전한 사회인지 되묻는,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은 세상이 서글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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