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농가 기본소득제를 주장한다

  • 입력 2018.03.30 10:31
  • 수정 2018.03.30 10:38
  • 기자명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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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5년 최초로 농가 기본소득제도 실시를 제안한 바 있다. 그 후 충남연구원의 박경철 박사가 후속 연구를 외롭고 줄기차게 제기함으로써 이제는 뜻있는 농촌문제 전문가와 지도자들에게 농가 기본소득제는 보편화 된 주제가 됐다.

때마침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정부가 지난달 15일 청년 일자리 주요 정책의 일환으로 중소기업 취업·창업 청년들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대규모의 재정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취임 10개월이 되도록 이상하리만큼 농업·농촌·농민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명문화했다. 지금이야말로 정책 아이디어 차원에서 농가 기본소득제 실시를 문재인정부에 건의할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돼 구고(舊稿)를 다시 꺼내어 정리해 본다.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농업의 다원적인 기능을 고려할 때, 농업·농촌을 지탱하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기본소득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다. 지난달 12일 충북 옥천의 한 들녘에서 농민들이 감자를 파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식량과 농업문제에서 국제 미아가 된 우리나라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 즉, 3농 문제는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그 후 급속히 진행된 50여개 농업강대국들과의 초고속 FTA 협상 타결로 거의 전 품목이 개방됨으로써 농산물 가격이 반토막으로 폭락함에 따라 농업소득이 연달아 위축되고 식량자급률은 60%에서 23%로 곤두박질쳤다.

농가소득은 25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절반에 불과해졌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농촌 교육·의료·복지·문화 수준은 새삼 물어보기조차 민망하다. 지난 정권 내내 ‘이명박근혜’ 정권에 의해 ‘농업이 미래 성장산업이다’, ‘창조농업이다’ 따위의 헛구호들만 난무하며 농업인 당사자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을 웃겼다. 아니 그림속의 떡 구경만도 못했다.

어느 별에서 온 딴 나라 사람인 그네들의 구름 잡는 이야기였을 뿐이다. WTO 농산물 개방과 FTA로 골수까지 골병이 든 3농 부분은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선 아예 외딴 섬에 내팽개쳐진 로빈슨 크루소 신세가 됐다.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농업강국들 한가운데에 고립된 식량농업 식민지 신세가 바로 현재의 우리나라 3농부문의 현주소이다. 식량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국제 미아(迷兒)이다.

단지, 먹거리 문제와 농업 문제는 선거 때만 존재하는 매표용 홍보사항이 됐을 뿐이다. 보통 때는 3농이 어떻게 되든, 농촌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나 3농이 소멸하든 말든 별로 관심이 없는 잊혀져가는 분야가 됐다.

그래서 지난 정부 이후 계속되는 농업경시 정책 환경이 ‘이대로(Business As Usual)’ 계속될 경우,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나라 식량(곡물)자급률은 현 23%에서 15% 대로 뚝 떨어져 세계에서 최하위 영구적인 ‘식량 식민지’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경고해도, 최고통치권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여야 정치권 지도자들은 눈 하나 꿈쩍을 안한다.

이미 나라의 식량주권이 미국 등 극소수 수출국들에 넘어가고 있는데도 한가하게 공산품 수출시장의 경제영토가 확대됐다고들 좋아한다. 멋도 모른 일반 국민들과 농업인들은 그네들의 황홀한 말잔치에 어이없어 할 뿐이다.

문제는 바야흐로 조국의 산하와 산, 내, 들, 금수강산 곳곳에서 우리 민초, 민생들이 시나브로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치명적인 미세먼지 및 중화학물질 등으로 숨쉬기조차 어려워진 서울 등 대도시 하늘을 뒤덮은 공기오염 현상, 마실 물의 오염과 혼탁 현상, 농약 투성이 수입농축산물과 유해색소 유해첨가물 또는 GMO(유전자조작식품)의 범람 등 인간의 3대 생명요소인 ‘공기-물-음식’의 위험수준은 날로 망가져 가고 있다.

헌법 개정안에 반영된 농업의 공익적 가치

이러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드디어 지난달 26일 발표한 개정 헌법 조문에 마침내 ‘농업의 공익적 가치’라는 오래된 미래가 신기루 같이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이제 헌법이 인정하는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가치에 근거해 3농에 관한 지원정책이 제대로 나래를 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찍이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타결이 임박할 무렵 농림축산업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농업의 다양한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을 우리나라도 가입한 선진국모임인 OECD 회원국 전원의 이름으로 선포했을 때 외면했던 농업의 공익가치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농업이 단지 식량과 섬유를 생산해 내는 일차산업적인 기능만이 아니고, 환경생태계를 보전하며,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지역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식품의 안전성과 국민 생존권을 보장하는 등 다원적인 공익기능을 수행하는 기본산업임을 천명한 것이다. 농업이 국가형성의 기본산업, 기간산업, 기초산업임을 재확인했던 그 심오한 농정철학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재인정부에 의해 햇볕을 보게 될는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WTO 협정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비교역적 관심사항(Non-Trade Concerns)’으로 표현을 바꿔 세계적으로 공인된 바 있었는데, 이제는 공식적으로 농업을 국가와 민족 형성의 최소한의 기본요소임을 천명할 수 있게 될는지?

지난달 26일 강원도 춘천시 서면의 한 들녘에서 농민들이 감자를 파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농업

UR 협상 타결을 전후해 일찍이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의 연구진들에 의해 우리나라 ‘논 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계측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산림청에서도 산림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계측 발표했다. 해가 지날수록 공적 다원기능은 점점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교역 상품으로서의 쌀값보다도 논 농업의 다양한 비교역적 관심사항(다원적 공익가치)의 3~7배의 가치를 은연 중 국민경제에 가져다주고 있음이 밝혀졌다. 산림은 그 공익적 가치가 목재생산액의 13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쌀의 경우, 교역 상품으로서의 평가액이 10조원으로 계측됐던 해의 논농사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은 홍수방지 효과+수질정화 및 지하수 공급효과+산사태 방지효과+이산화탄소 흡수효과 및 산소배출 효과만을 계량하더라도, 최소 30조원에서 70조원으로 계측됐다. 여기에는 계량화하기 어려운 문화와 전통의 보전 가치, 농촌 지역사회 발전 및 경관의 가치, 식량 안전 및 안보 효과 등을 계상하지 않았는데도 그러하다.

같은 논리로, 여타 밭작물과 과수 및 축산업 그리고 농기자재 등 농업 관련 산업의 전방효과와 농산물 제조, 가공, 유통, 무역 등 후방효과를 평가에 포함해 계량화 한다면, 농업부문이 현 농산물 가액, 약 50조원의 몇 십 배의 보이지 않는 다원적 공익가치를 우리 국민경제에 추가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꿔 말해, 쌀 등 우리나라 농축산물의 시장가격이 비싸다고 무조건 수입개방에 의존할 경우 가격경쟁에서 탈락한 액수만큼의 우리 농축산물이 단순히 우리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국민들에게 공짜로 베풀어 줬던 그 수십 배에 달하는 다양한 공익적인 가치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뜻한다. 이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농가 기본소득 보장, 국가와 국민의 의무 

월 평균 농가당 50만원씩을!

일찍이 EU, 미국, 캐나다 등 구미 선진국들과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이 같은 농업의 비교역적 다양한 공익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인식을 바탕으로 어떤 방식, 어떤 형식으로건 우선적으로 농업생산력 주체인 농업인들의 기본소득과 농민의 권익보장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국의 선량한 백성들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인간적인 삶을 유지발전 하는데 필수적인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교육·문화·의료·복지 등에 차별이 없도록 배려하는데 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농업에 종사한다는 이유 때문에 소득수준과 의료·복지·교육 등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방치하는 나라는 그리고 그러한 정부는 존재의미와 존재가치를 상실한 정부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김대중정부 시절 국가경제가 총체적으로 부도가 난 IMF 환란 속에서도 그리고 서슬 시퍼런 WTO의 감시하에서도 각종 농민지원 조치인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를 비롯, 논(쌀)농업 직불제, 조건불리지역 직불제, 밭농사 직불제도 등을 도입해 농가와 농업·농촌을 지원했다.

물론 건당 지원규모가 당시 국민경제 상황에서 낮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IMF 통치체제를 졸업한 이후의 ‘이명박근혜’ 정부에서는 오히려 그 배려수준이 미약해 2013년 기준 직불금 지원수준은 농가평균소득의 4.3%에 불과했다.

스위스, 스웨덴 등 선진국 정부의 직간접 농가 지원액은 오지에 사는 농민들을 더 많이 배려한다. 그리하여 EU의 평균 공적 지원액은 농가소득의 40~60%에 달한다. 미국은 40% 언저리로 올라섰다. 캐나다는 아예 최저 농가소득 보장제도를 실시했다.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이 최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이 보장되면 적정할 것인가에 대한 관련 연구결과는 아직 빈약하다. 박경철 박사는 농민 단위의 기본소득 지원을 주장한다.

필자는 논의의 편의상 도시근로자 가구의 법정 최저임금소득의 50%를 농가에 직접지불방식으로 지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농가 호당 약 월 50만원, 연간 600만원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 기본소득 수치를 전국 농가 100만호에 일괄 지급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총 6조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그 재원은 1) 기존의 각종 직불금 예산액(단, 친환경 직불금은 제외)의 합계

2) 줄어들고 있는 농가 수에 대비 중앙정부, 지방정부 및 농관련 공공기관과 농·축·수협, 산림조합 등의 인원을 최소 10% 정도만 상응해 줄이는 대대적인 중앙, 지방조직에 대한 구조개혁(감축) 단행으로 절감한 비용

3) 현 농림수산 예산액 중 비농어민 조직과 기업들에 지원되는 각종 비농업적 지원액 삭감

4) 기존의 농림축수산식품 예산과 기금 및 농특세(UR 사후 대책) 예산액 중 일부 불요불급한 항목의 예산 전용

5) FTA(농업시장 완전개방)에 따른 국가 및 기업의 이익 또는 수익금의 농업부문 공유제 시행 등을 상정해 정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기조, 기간산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이 우리나라 국민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비교역적 다양한 공익기능과 공익적 가치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되돌려 받게 할 수 있을 때 현대판 ‘농자천하지대본’의 세상이 활짝 열릴 것이다.

그래야 우리와 오고 또 올 우리 후손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가 확고해질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용단을 대망하자.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의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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