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P, 정책적 정리 절실하다

친환경인증제와 함께 ‘안전 프레임’에 빠져 오용
유기농·무농약과 차이 없는 마크로 소비자 혼란
김영록 전 장관, ‘인증마크 수정’ 말해놓고 중도 사퇴

  • 입력 2018.03.25 11:51
  • 수정 2018.03.25 11:52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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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의 ‘정책적 정리’가 절실하다. 전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GAP가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와 정책적으로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아, GAP와 친환경농업 정책 수행 양쪽에 모두 혼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GAP는 농산물 생산·유통 과정의 전반적인 관리를 위한 제도로, 친환경인증제와는 별도의 제도이다. 그러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안전 프레임’, 즉 ‘친환경농산물은 안전한 농산물’이란 프레임이 강하게 자리잡은 상황에서 친환경인증제와 GAP 인증제의 목적이 비슷한 걸로 오인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GAP 인증제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을 위한 또 하나의 친환경인증제도로 오용돼 왔다. 마침 2016년에 기존의 친환경인증제도 상 하위 제도 중 하나였던 저농약 인증제도가 폐지되면서, 사실상 그 자리를 GAP 인증제도가 채우다시피 했다.

이는 저농약 인증제 폐지 이후 정부 및 일부 지자체 차원의 정책 수행 양상을 봐도 알 수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지난해 8월 8일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학교급식 관계자 2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GAP 농산물의 학교급식 이용 확대를 위한 현장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들은 직접적으로 “친환경농산물은 환경보호 목적인데 GAP 농산물은 먹거리 안전성에 중점을 뒀기에, 학교급식에선 GAP 농산물이 더 적합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피력했다. 친환경농산물이 상대적으로 비싸단 것도 학교급식에서 GAP 농산물 사용을 늘리려는 논거로 등장했다.

경남도 뿐만이 아니다. 각지에서 친환경농업 발전을 표방하면서도 GAP 농산물 공급을 늘리려 하거나, 학교급식에 친환경농산물 대신 GAP 농산물을 늘리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GAP 인증 농산물을 친환경농산물로서 공급을 확대하겠단 입장을 밝혔고, 문 대통령의 취임 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GAP 인증제도의 확산을 위해 5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정책이 계속되다 보니 소비자들은 GAP 인증제를 사실상 ‘또 하나의 친환경인증제’로 인식한다. 인증마크부터가 그러한 오해를 부추긴다. 유기농·무농약 인증마크와 마찬가지로 GAP 인증마크도 녹색 사각형에 녹색 글씨를 쓴다.

실제로 KBS 1TV 방송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서 지난 1월 19일 ‘가장 깐깐한 친환경농산물 인증마크는?’이란 주제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친환경인증마크인 무농약 마크보다 GAP 마크에 더 많은 시민들이 스티커를 붙일 정도였다.

김영록 농식품부 전 장관도 며칠 후인 1월 24일 친환경농민들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원들이 유기농 및 무농약 인증마크와 GAP 마크의 모양이 차이가 없다는 문제를 설명하자, 마크에 문제가 있으니 바꿔야겠단 입장을 피력했다. 현장에서 관료들에게 해당 내용의 검토도 지시했다. 그러나 정확히 두 달 뒤 김 전 장관은 전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이유로 사퇴해 인증마크 개선이 당장 실현될지는 미지수가 됐다.

국내 GAP 인증제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GAP와도 차이가 난다. 글로벌 GAP는 생산현장에서의 해충종합관리(IPM)·위험평가·환경보전·추적성·작업자 복리후생 등을 위한 제도로, 해외 각 나라에선 유기농 인증제도와는 철저히 구분해 해당 제도를 운용한다. 유기농 인증을 이미 받은 농민들이 글로벌 GAP 인증을 받아 농산물 관리를 하는 경우는 많다. 글로벌 GAP는 한국의 GAP와는 달리 인증마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은 “GAP 인증제는 제대로 활용한다면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생태보전성을 살려가는 방향으로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농업정책 상에선 상당히 오용되고 있다”며 “친환경인증제와 GAP 인증제 공히 ‘안전한 농산물 생산’을 위한 제도로 활용돼, 원래의 제도 목적과는 괴리된 채 존재하고 있다. GAP 인증마크를 없애고 친환경인증제도와 명확히 목적을 구분하고 동시에 글로벌 GAP 인증기준에 맞춰 GAP 인증제도를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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