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개혁, 이대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 입력 2018.03.23 10:13
  • 수정 2018.03.23 10:15
  • 기자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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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편집국]

국민들은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엄동의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했다. 3개월여 동안 진행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역시 국민의 뜻과 다르지 않았다.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판결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리고 2개월 후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5월 9일까지 진행된 일련의 사태는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박근혜의 탄핵은 외형적으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서 출발했지만, 그간 켜켜이 쌓여진 우리 사회의 적폐가 ‘박근혜’라는 상징을 통해 드러났으며 국민들은 그것을 청산하라고 촛불을 들었다.

우리가 문재인정부를 촛불혁명정부라 부르는 이유다. 따라서 적폐청산이 문재인정부에게 부여된 제1의 과제다. 문재인정부 역시 시대적 요구를 인식하고 있으며,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적폐를 걷어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4월·5월 연속으로 예정된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그에 대한 대답이다.

그런데 유독 농업 부문에서는 미동도 없다. 적폐청산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벼랑 끝에 선 지 오래인 농민들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 출범에 실오라기 같은 기대를 걸었다. 개방농정으로 유린될 대로 유린돼 희망을 잃은 농민들에게 희망의 빛이 비출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데에는 불과 10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실 문재인정부 출범에 농정개혁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문재인정부가 밝힌 100대 국정과제에 농업 관련내용은 겨우 3개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내용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임명에 앞서 차관을 임명하면서 박근혜가 임명한 차관보를 승진시켰다. 개혁농정을 오매불망 기대하던 농촌현장은 실망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새로운 장관이 취임해서 당면과제인 쌀값 폭락사태를 진정시켰다. 이제야 개혁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허나 김영록 장관은 농업의 적폐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고작 용산 화상경마장을 적폐라 할 정도였다.

농업의 적폐는 지난 20년간 지속해온 농산물 개방이다. 그리고 농산물 개방을 상수로 고정시킨 관료집단이다. 이로 인해 농정은 왜곡되고 농업·농촌·농민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농업·농촌·농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근본 문제는 그대로 두고 기존의 농정을 적당히 보수하는 것이 농정개혁인 양 포장됐다. 골조가 허물어지는 집을 지붕만 고치거나 대문만 새로 만드는 격이다. 결국 농정개혁이란 과제를 안고 취임한 장관이 얼마 안 돼 관료들에게 포위됐다.

김 장관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농정개혁위원회를 보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농정개혁위는 위원들 대다수가 ‘개혁’에 걸맞지 않은 인사였고, 운영 자체도 관료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관료들은 기존 정책을 표지만 갈아치운 뒤 농정개혁위의 세탁을 거쳐 새 정부의 농정개혁안으로 포장하려했다. 그나마 정현찬 농정개혁위 공동위원장과 일부 농민단체의 노력으로 개혁의 불씨를 살리려 했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김영록 장관이 취임 8개월 만에 장관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도지사 선거에 나선 것이다. 이로써 문재인정부의 농정개혁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좌절됐다. 이제 새로운 장관 자리를 두고 농정의 적폐인 전·현직 관료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부 언론은 관료들의 사주를 받은 듯 이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적폐청산과 농정개혁이 물 건너 간 자리에 개혁의 대상들이 준동하는 사태를 맞고 있다.

이는 누구랄 것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다. 후보 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대통령의 농정철학 부재가 오늘날 농업개혁의 불씨를 꺼뜨리고 있다.

농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이 박근혜의 약속과는 그 무게가 다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사회 각 분야의 새 바람 속에 오로지 농업만이 무풍지대인 지금, 문재인과 박근혜의 약속이 똑같은 구호에 불과하다고 여긴다면 과한 이야기일까? 그래서 농민들은 주문한다.

“농정관료부터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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