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 가득’ 농개위 공청회, 말잔치로 끝나나

형식은 파격적 내용은 상투적 … 농식품부 관성에 갇혀
“농정관료가 농업적폐 1호,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이유”

  • 입력 2018.03.23 10:10
  • 수정 2018.03.23 10:12
  • 기자명 배정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지난달 25일 충북에서 ‘협치와 소통’의 첫 발을 뗀 농정개혁위원회(위원장 정현찬, 농개위) 전국 공청회는 기존 농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농민들의 실망만 키워가고 있다. 여기에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사퇴로 농개위는 단일 위원장 체제로 전환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1일 개최 예정이었던 전남 공청회가 돌연 취소됐다. AI로 일정이 지연된 경기와 기상악화로 취소된 제주에 이어 세 번째로 공청회가 무산되자 장관 부재로 농개위의 동력이 상실된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다행히 26일 강원 공청회가 예정대로 진행되면서 불안은 잠시 가라앉은 듯 보인다.

지난달 19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농정개혁위원회 전국 순회 공청회 첫 일정에서 김영록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인사말을 마친 뒤 다른 일정을 이유로 공청회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4일 취임 8개월여 만에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장관직에서 사퇴했다. 한승호 기자

고작 5회를 진행하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청회였지만, 인정해야할 부분은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농식품부의 공무원들이 농민과의 협치·소통을 전면에 걸고 현장을 찾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파격적”이라는 게 현장 농민들의 평가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내용에 있었다. 농민들은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었으나 듣고 싶은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농식품부와 다를 바 없다. 역시 뻔했다.” 그리 크지도 않았던 농민들의 기대는 아주 쉽게 물거품이 돼버렸다. “현실적 검토가 필요하다”, “논의하겠다”, “공감하지만 개별적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등 농식품부 공무원의 책임회피성 답변이 원인이었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충북 공청회 사회를 보면서 농식품부에 “형식적인 답변 말고 구체적 답변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공청회에 대해 윤 교수는 “농민들은 당장 현장에서 겪는 미시적인 대안에서부터 중앙정부가 해야 할 거시적 농정까지 의견개진을 많이 했다. 그러나 농식품부 대표로 참석한 사람은 국장급들이었고 그 마저도 일부이다 보니 답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장보다는 장관이나 차관, 정책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획실장이 현장에 왔어야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농정관료는 지금의 농정을 바꾸려는 의지가 약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관료들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라고 지적하면서 “장관이나 대통령이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줘야 한다. 관료들의 틀을 깨고 방향을 설정해줘야 타성에 젖어 있는 농정관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조원희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은 “인적청산이 필요하다. 지금 국장급들은 개방농정의 설계자이자 집행자들”이라며 “기존 관료들이 농정개혁을 주도한다면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현장 전문가들을 과감히 투입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지금의 농정관료가 어렵게 얻은 소통의 기회를 잃게 한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것은 공청회 중 한 공무원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경남 공청회에 참석했던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농식품부 공무원 입에서 쌀값이 비싸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소비자가 비싸다고 하면 농민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홍보를 해야 하는 것이 농식품부다. 그런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 정책을 담당하고 있으니 애초에 우리가 하는 질문에 답변에 나올 수가 없는 구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농개위에는 애초부터 협치와 소통을 통한 ‘목표’가 없었다. 이 위원장은 “농개위가 먼저 무엇을 개혁할 것인지를 분명히 했어야 했다. 지금의 농업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 안에 적폐는 없는지를. 토론에 있어 현장 농민이 느끼는 주제와 농개위가 생각하는 주제가 달랐다”고 꼬집었다.

결국 농개위 공청회는 농업적폐 1호가 농정관료들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됐다.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적폐 당사자들에게 계속 적폐청산을 요구해왔던 꼴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공청회를 통해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챙겨야 할 당위성이 높아진 것으로 본다. 토론회를 반복하면서도 책임 있게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결국 농식품부의 의지가 그만큼 없었다는 반증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한편, 농식품부는 26일 강원도 공청회를 마친 후 경기, 전남, 제주 토론회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장관자리가 공석이라고 해서 지지부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농민단체와 모든 내용을 협의해서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